<기생충>(2019.봉준호)
2019년 5월,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한국 영화 한 편이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들의 이야기”라는 단순한 구조 아래, 이 영화는 계단 하나, 창문 하나, 냄새 하나까지 빈틈없이 설계된 이미지로 자본주의 사회의 균열과 인간의 존엄을 날카롭게 그려냅니다.《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옥자》에 이르기까지, 봉준호 감독은 장르를 넘나들며 언제나 ‘시스템 속 인간’을 응시해온 감독입니다. 그리고 《기생충》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날렵하고도 잔혹한 리얼리즘으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하나의 집’ 안에 압축시킨 영화이기도 합니다.
🪜 계단 아래, 빛을 올려다보며
<기생충>의 구조적 공간을 침입이라는 모티브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 에서 계단, 외부인의 침투를 오마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오마주로는 히치콕, 클루조, 샤브롤,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까지 언급되었습니다. 90% 세트 촬영으로 박사장네는 전주와 안성에 분산된 거대한 세트로 제작 되었고 반지하 동네는 실제 재개발 구역에서 자재를 가져와 세밀한 디테일로 구성하였습니다. 반지하와 대저택의 울림 차이로 빈부격차를 표현 했습니다. 냄새와 계단, 공간의 위계, 숨겨진 존재등으로 사회 계급 구조를 은유하고 영화 제목 <기생충>은 누가 기생하는가를 묻기보다 관계 구조를 성찰하게 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예의, 인간 존엄, 공생과 기생 사이의 경계를 주제로 삼았다고 밝혔습니다.
오마주란 영화에서 특정 작품의 장면 등을 차용하여 해당 작가나 작품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는 것으로 프랑스어로 경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기생충>은 그런 숨은 오마주들로 가득 찬 영화입니다. 특히 1961년에 발표된 김기영의 <하녀>에서 중산층 계급이 정착되지 않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1층과 2층으로 분리된 양옥집 구조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극중 하녀의 숱한 침입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한 영화입니다. 봉준호는 <기생충>에서 훨씬 다층적이고 풍부한 서사와 미장센으로 계급충돌 내러티브를 확장하였습니다. 봉준호는 NPR 인터뷰에서 <기생충>을 김기영 감독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말했습니다.

1.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 '계단'과 '외부인의 침입'
- 봉준호가 직접 언급한 대표적 오마주입니다.
- 〈하녀〉에서도 계단은 계급의 상징입니다.
- 부르주아 가정의 2층 위로 하녀가 올라오고, 비극이 시작됩니다.
- 《기생충》에서도 반지하 → 박사장네 → 지하실로 이어지는 공간의 수직 구조와
- 문광의 귀환은 모두 ‘외부인의 침투’와 계급 붕괴의 전조를 보여줍니다.
- 특히 문광이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장면은 〈하녀〉에서 하녀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의 시각적 리듬과 감정의 파열을 오마주한 것입니다.
2.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 → 상류층의 ‘위’ 시점과 거리감
- 영화 초반 박사장네 저택에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 그리고 기택네가 그 집을 올려다보는 시선은
- <천국과 지옥>의 ‘고지대 저택’과 빈민가의 대비에서 따온 오마주입니다.
- 구로사와 역시 '공간'으로 계급을 말했습니다.
- 봉준호는 이를 이어받아 시각적 구도를 통해 위계질서를 말합니다.
3. 이마무라 쇼헤이 – ‘하층민의 몸’에 대한 관심
- 일본 감독 이마무라는 늘 하층민의 삶, 음식물, 배설, 가족을 파고들었습니다.
- 《기생충》에서도 반지하 집의 냄새, 음식물 쓰레기,
- 홍수 속에서 떠내려가는 삶의 찌꺼기들이
- 바로 그 생생한 ‘몸의 언어’와 물질성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4. 히치콕의 〈싸이코〉 → 숨겨진 공간과 이중적 얼굴
- 박사장네 집 지하실의 존재는 〈싸이코〉의 **‘숨겨진 지하 공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 겉보기엔 완벽한 가정, 그러나 아래에는 은폐된 폭력과 비밀이 도사린 구조.
- 히치콕의 공간 연출은 봉준호의 긴장감 넘치는 ‘숨바꼭질’ 시퀀스에서 반영되었습니다.
5. OST와 이미지의 비틀기 – 알모도바르 & 샤브롤 스타일
- 이탈리아 칸초네 〈당신에게 무릎을 꿇고〉가
- 잔혹한 격투 장면에 깔리는 아이러니는
- 프랑스의 클로드 샤브롤, 스페인의 알모도바르처럼
- 폭력과 유머,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병치하는 감각적 오마주입니다.
보너스 – “짜파구리”의 조리법
- "고급 고기와 가난한 라면의 결합"은
- 한 끼 식사 안에 존재하는 계급의 충돌입니다.
- 미학적으로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일상 속 전복과 전율을,
- 사회적으로는 김기영의 부르주아의 취향 속 외설성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 비가 내리던 밤, 삶이 무너졌다
영화 속 공간, 인물 배치, 색채, 조명, 오브제, 사운드 등 시각적 구성 전체를 미장센이라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미장센을 숨 쉬는 듯한 설계로 살아 움직이게 만듭니다. 박사장네 집에선 고요한 잔치가 있었고 기택네 가족은 몰래 그집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공간은 곧 터질 긴장 속의 질서처럼 팽팽히 조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문광의 복귀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 그 순간부터 미장센은 움직입니다. 조명은 어두워지고, 프레임은 기울며 집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구조가 천천히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그들은 집을 뛰쳐나와 수십 개의 계단을 내려갑니다. 카메라는 말없이 그들을 따라가며 삶의 기반이 물로 씻겨 내려가는 순간을 묵묵히 바라봅니다. 그날 밤 비는 축복이자 재앙이었고 미장센은 말없이 선언합니다.
"이 집은 당신들 것이 아니다."
계단 – 수직적 공간의 상징
- 집 안 곳곳의 계단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계급 이동의 불가능성을 상징합니다.
- 기택 가족은 항상 올라가야 하고,
- 박사장 가족은 항상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 폭우가 쏟아진 그날 밤,
기택 가족이 박사장네에서 나와 계단을 수십 개 내려가는 장면은
시각적 파열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비와 물 – 구조의 작동과 붕괴
- 박사장 가족에게는 ‘정원에 내리는 축복’,
- 기택 가족에게는 ‘삶의 기반을 쓸어버리는 재앙입니다.'
- 침수된 반지하의 계단 위로 물이 역류해 올라오고,
- 화장실 변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올 때
- 그들의 세계가 ‘오르고’ 있는 건 물 뿐이에요.
➡️ 미장센으로서 물은 파열의 사자입니다.
공간을 가르고, 삶의 층위를 침범합니다.
오브제 – 물건들의 계급성
- 짜파구리: 고급 한우와 저가 라면의 결합,
- 냄새: 공간마다 다르게 흡착된 계급의 흔적,
- 모스부호: 이해되지 않는 소통, 끊어진 신호.
➡️ 이들은 모두 **‘파열 이후의 징후’**이자,
인물들이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것들을 미장센으로 대신 말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내러티브와 미장센의 동시작용
- 영화의 내러티브가 가족 간 침투 → 위장된 평화 → 파열의 밤 → 침묵과 폭발로 전개되는 동안,
- 미장센은 그 모든 단계를 시각적으로 취합니다.
예를 들어,
- 문광이 비를 뚫고 돌아오는 장면에서의 강한 그림자와 습기,
- 기택이 우산을 들고 정원에서 박사장을 바라보는 장면의 공기감과 거리감,
- 근세가 계단 위로 올라올 때 조명이 아래에서 위로 쏘는 괴기스러운 조명 등은
-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시각적 감정’**의 언어입니다.
👣 냄새와 침묵, 인간 사이의 경계
박사장이 운전기사에게서 나는 냄새를 아내에게 말하는 장면은 사회적 거리를 감각적으로 재는 대사입니다. 냄새는 계급의 언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몸에 배인 흔적, 쉽게 씻을 수 없는 삶의 잔여물로 침묵 속에 분리된 자들을 가리킵니다. 기택은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말이 줄어듭니다. 침묵하며 대신 시선을 내리고 숨을 참고 냄새를 감춥니다. 감독은 이 감정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침묵 자체로 존재의 소거를 보여줍니다. 박사장의 말에서 타인을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분명하게 거리두는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몸에서 나는 가난의 흔적은 기택을 침묵하게 만듭니다. 감독은 이 침묵의 정서를 사운드로 표현합니다. 고요한 집, 울림 있는 공간, 여유의 소리. 그에 반해 반지하 집은 거칠고 끊기고,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사소한 선택
봉 감독은 GQ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을 사용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en.wikipedia.org+2gq.com+2v.daum.net+2:
“제 아버지가 이탈리아 LP를 많이 들으셨는데,
제가 특정 곡을 아는 건 아니었어요.
칸에서는 이 곡이 깔린 장면이 나왔을 때,
감독과 사람들은 ‘지중해의 햇살’을 떠올릴 정도로 평온했죠.
사랑 노래에 어울리는 이 곡이, 폭력적인 장면과 충돌하는 아이러니가 좋았어요.”
즉, 큰 철학적 의미를 담기보다,
“사랑과 폭력이 어색하게 만나는 감정의 부조화”를
장면의 긴장에 더해주는 방식으로 곡을 넣었다는 것이죠.
🔍 요약
- 음악: 잔니 모란디 – In ginocchio da te (“당신에게 무릎을 꿇고”)
- 장면: 지하실에서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의 격투
- 의미:
-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큰 의미 부여 없이 선택되었지만,
- **감정적 대비 (폭력 vs. 사랑 노래)**를 통해
서스펜스의 아이러니, 불편함, 코미디적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함 kmdb.or.krv.daum.netcine21.com.
🌑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모스부호
다송이(박사장네 아들)가 텐트 안에서 침묵 속에 잠들기 전 기묘한 깜빡임을 발견합니다. 지하에 갇혀 있는 근세(문광의 남편)가 손전등의 깜빡임으로 단순한 모스신호를 보냅니다. 다송은 감각적으로 어떤 존재가 지하에 있다는 걸 인지 했지만 말로 옮기거나 해석하거나 도움 요청으로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박사장 가족의 정원 위에 임시로 세워진 텐트는 지상과 지하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장막입니다. 그 안에서 다송은 놀이를 하지만 지하의 신호는 닿지 않습니다. 기생은 그렇게 추방 당하고 외면되고, 잊혀지는 자의 비명입니다. 다송이가 인디언 놀이에 집착하는 건 단순한 아이의 취향이 아니라 지하의 존재를 환상과 놀이로 감싸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인디언을 추방된자, 밀려난 자로 상징하고 해석하며 기생하는 자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추방 된 존재들임을 암시한다는 해석입니다.
정원의 평화와 지하의 절규가 맞부딪치는 순간, 분출된 분노가 어떻게 비극의 불꽃이 되었는지 영화의 엔딩은 이 모든 것을 담은 시선입니다. 모든 계급의 균열, 모든 침묵의 축적, 모든 냄새의 모멸감이 한 순간에 파열되는 미친 정원극이자 봉준호식 복선의 완전한 폭발이기도 합니다. 다송이의 생일파티 위에는 기생과 폭력, 분노의 잔재들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근세는 또 다른 침입의 귀환이며 기태는 돌을 들고 내려갔다가 근세에게 제압당하고 돌은 기태의 머리를 강타합니다. 피범벅이 된 근세는 계단을 따라 파국을 끌고 올라옵니다. 케이크를 들고 가던 제시카를 칼로 찌르고 충숙과 몸다툼을 벌입니다. 박사장은 기택에게 차키를 던지라고 하고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 코를 막는 손짓으로 기택에게 다시 한번 냄새에 대한 모멸감을 일으키게 합니다. 분노에 찬 기택은 박사장을 칼로 찌르게 되는 존엄 전체를 찢는 몸의 언어인 셈입니다.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누적된 침묵이 폭발한 한 줄기 칼날이었습니다.
기우는 머리에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한달만에 깨어나 자꾸 웃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신호 깜박이는 모스신호를 해독하고 답장을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 그 집을 사고 아버지는 계단을 올라 나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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