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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사찰순례 - 천 개의 관음상 그리고 하나의 마음

by 쌍차쌍조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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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순례 마지막날의 여정입니다. 아침 9시 출발 빗방울이 떨어지는 교토역 지나 토지 사찰를 지났습니다. 목조로 세워진 오층탑이 이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꿰뚫고 서 있는 하나의 시간의 첨탑 같았습니다. 그 아래에서 오래전 쿠카이 대사가 마주했을 세상과 마음을 포개며 숨을 고르듯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렌게오인의 1001개의 웅장한 관음상은 압도적으로 마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내 안에 이 분들이 계셨습니다.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고 마침내 죽음조차 두렵지 않게 된 평온을 느낀 뵤도인(평등원)에서의 관음상은 자비로움 자체였습니다. 미무로토지의 수국의 향연속에서 순례의 여정을 마치며 감사하며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 렌게오인 (Rengeō-in, 산쥬산겐도) --관음의 숲

 

마지막 날의 첫 여정은 토지 였지만 버스 창 너머로 스쳐가는 오층탑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정보다 더딘 걸음에 나의 허리통증이 보태었기에 이만해도 감사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창에 맺힌 빗방울 너머, 흐릿하게 오층탑의 실루엣은 마치 시간 속 기억처럼 느껴졌습니다. 

토지는 796년 창건된 교토이 동쪽 사찰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목조탑인 54.8미터 오층탑은 국보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수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쳐 1643년, 도쿠가와 3대 쇼군 이에미츠의 명으로 다시 세워졌고 끝내 지키고 선 모습은 시간의 몸짓 같았습니다. 이 사찰 안에는 토지의 창건자이자 일본 밀교의 아버지인 쿠카이를 모시는 미에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가 터 위에 세워진 이곳은 매달 21일에 쿠카이를 기리는 공양이 봉행되는 날에만 문이 열립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하시는 열정과 정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순례의 걸음마다 교토 곳곳에서 만난 불교의 결에서 끊임없이 쿠카이 대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그치고 도착한 렌게오인 입구에는 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우리를 맞이했고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은 뒤 본당 안으로 천천히 걸음으로 옮겼습니다. 

이곳은 천태종의 불교 사찰로 1164년 타이라노 기요모리가 고시라카와 천황을 위해 창건한 사찰입니다. 현재의 본당은 1266년 가마쿠라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사찰 전체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렌게오인의 중심에는 본존 천수관음 좌상과 양옆으로 늘어선 1000구의 천수관음 입상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입상들은 세 개의 불교 조각가 집단 계파, 엔파, 인파에 의해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작되었으며 그 기원은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를 포괄하는 인도 달마 신화에 닿아 있습니다. 그 중 화재에서 살아남은 124구 외에 천황은 잃어버린 조각들을 대체하기 위해 876구의 새로운 관음상을 제작하돌고 명했습니다. 

조각상의 재료는 금박을 입힌 일본산 사이프러스 10줄 50열로 정렬된 실물 크기의 입상은 본존 좌상(3.3미터)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마치 관음의 숲처럼 본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각 조각상은 손에 다른 상징물을 들고 있으며 표정 또한 제각각이라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과 닮은 관음상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날 나는 사진에 찍히는 것을 하지 좋아하지 않지만 관음상 앞의 수호신 중 하나의 포즈를 따라 하며 사진 포즈를 취했습니다. 그 포즈는 이후 일정 내내 묘한 든든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분을 흉내 낸 것은 그분과 마주함이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얼굴, 그 마음이 내 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렌게오인의 수호신 28상은 모두 힌두교 산스크리트어 경전에 기원을 두고 있고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교토 한복판의 불교 사원 안에 힌두교와 불교, 다르마의 신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도에서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영적 문화의 확산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120미터에 이르는 33당칸의 본당을 걸으며 관음의 손길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평온하고도 든든한 마음이었습니다. 천 개의 눈이 나를 보고, 천개의 손이 나를 안아주는 듯한 그 날의 감각은 지금도 여전히 마음 속에서 묵직함으로 빛납니다. 

 

렌게오인 본당 관음상

🪷  뵤도인 (Byōdō-in, 平等院)

드디어 이번 교토 사찰 순례의 하이라이트, 뵤도인(平等院)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갠 뒤라서였을까요, 하늘은 청명했고, 연못 위에 호오도(鳳凰堂)가 마치 떠 있는 듯 맑게 피어올랐습니다.
출발 전엔 “이제 절이란 절은 원 없이 다 보겠다”며 들뜬 마음도 있었지만, 막상 마지막 여정에 서고 보니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절은 많은 곳을 다녀 보면 좋단다." 

어린 나는 그 말씀이 이상했습니다. 종교란 한곳에서 깊이 믿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기복신앙의 형태를 알았던 입장에서는 평생을 불교에 귀의하셨던 어머니 깊은 속을 다 알 수는 없었겠지요. 종파는 달라도 결국 마음은 하나라는 그 마음의 본질이 자비임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사찰 뵤도인(평등원)입니다. 본당의 아미타여래의 자비 앞에서 처음으로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뵤도인은 원래 귀족의 별장이었습니다. 후지와라노 요리미치(藤原頼通)가 아버지 미치나가로부터 물려받은 별장을 1052년, 사찰로 전환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불교가 쇠퇴하고 세상이 타락하는 말법(末法)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믿었기에, 요리미치는 이곳을 극락 정토로 연결되는 문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053년, 극락 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불당인 호오도(鳳凰堂)가 세워졌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정면에서 보면 양 날개를 펼친 새처럼 보이며, 지붕 위엔 금빛 봉황 두 마리가 마주한 채 서 있습니다. 이 봉황은 죽음 이후의 재생을 상징하며, 호오도라는 이름 역시 이 봉황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지금도 일본 10엔 동전 뒷면에 새겨져 있을 만큼, 정토정원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봉황당의 봉황

 

본당 안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체가 노송나무로 제작된 목조 불상이며, 몸의 각 부분을따로 조각해 조립하는 요세기즈쿠리(寄木造)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기법은 헤이안 시대의 대표 조각가인 조초(定朝)가 완성시킨 것으로, 곡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운 표현이 특징입니다. 이 불상은 오늘날까지 조초의 유일한 현존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불상의 뒷면에는 후광과 천개(天蓋)가 정교하게 맞춰져 있고, 이음매마다 삼베를 붙이고 옻칠한 후 금박을 입혔기에 겉으로는 매끄럽고 끊김 없이 연결되어 보입니다. 그 정교함은 신앙의 솜씨라기보다,
극락에 가닿기 위한 조형의 기도 같았습니다. 본존을 둘러싼 운중공양보살상(雲中供養菩薩像)은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며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으로, 극락을 비상하며 아미타여래를 찬양하는 존재들입니다.

 

아미타여래좌상과 운중 공양보살상

 


원래 52구였던 이 불상들 중 절반은 박물관 호쇼칸(鳳翔館)에 옮겨져 있고, 불당 안에 걸린 것들은 복제본입니다.

별도 입장료를 내고 박물관에 들어가 그 보살상들을 한 명 한 명 가까이서 마주했습니다. 특히 한 분의 미소가 잊히지 않습니다. 친근하고 따뜻하면서도, 그야말로 자비상이라 부를 만한 표정. 그분은 아마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악기를 연주하며 나를 마중 나올 분이겠지요. 아, 나는 이미 그분을 만났구나. 죽음이란 바로, 축제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박물관에서의 분위기는 극락이었습니다. 

박물관의 한 벽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을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아미타여래와 운중 공양보살이 악기를 연주하며 내려 오는 모습을 그린 '구품내영도'가 있습니다. 이 그림을 잠시 머물러 바라보며 죽음, 그까짓것 별거 아니다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림 속의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축제였고 언젠가 가야 할 천상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연못 건너편에서 본 봉황당은 그 자체로 극락 정토의 궁전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내가 품고 있던 죽음의 두려움과 작별했습니다. 코다하마에서 두부를 먹던 순간도, 오쿠노인의 적막 속에서 마주한 혜안도, 아라시야마 대숲의 비 내리는 풍경도 모두 떠오르며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 순례는 어딘가를 보는 여정이 아니라 다시 나를 만나는 여정이었습니다. 출발 전의 기도를 정말로 들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봉황당 앞에서 수호신 포즈
순례 여정을 기도로 마치며

 

 

🌺 미무로토지 (Mimurotoji, 三室戸寺)

 

기도를 품고 교토 사찰을 밟은 그 순간 나를 향한 길이 되었습니다. 모든 걸 비우고 돌아왔지만 모든 걸 안고 돌아왔습니다.  첫 여정 단조가란의 붉은색의 사찰이 낯설었는데 마지막 사찰과 신사의 혼불 형태는 친근하기까지 했습니다.

토끼를 모시는 신사와 사찰의 융합인 미무로토지에서 수국정원의 수국을 마음껏 감상하며 수국의 헛꽃도 역활이 있듯이 나는 어떤 역활로 지금 이 세상에 왔습니다.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운중 공양보살과 아미타여래가 풍악을 울리며 마중 나올때까지 날마다 축제처럼 살아야겠습니다. 

수국의 종류는 다양하지지만 그중 단아한 산수국은 꽃차례가 보통의 수국과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헛꽃과 참꽃이 차례로 피어나는데 이 과정을 보면 참으로 지혜로운 꽃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헛꽃은 꽃차례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크고 화려한 꽃잎처럼 생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헛꽃은 암술과 수술이 없는 무성화입니다. 그러나 멀리서도 눈에 잘 띄게 화려한 모습으로 곤충과 같은 수분 매개자들을 유인하는 광고판 역활을 합니다. 산수국은 숲속 그늘진 곳에서 자라기 대문에 수분 매개자들을 효율적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헛꽃을 진화해왔습니다. 헛꽃 덕분에 곤충들은 산수국 꽃차례를 쉽게 발견하고 다가오게 됩니다. 참꽃은 헛꽃이 피어난 다음에 안쪽 중심부에 옹기종기 피는 작은 꽃입니다. 이 참꽃은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가지고 있어 씨앗을 맺을 수 있는 번식 능력이 있는 유성화입니다. 헛꽃이 유인한 곤충들이 참꽃으로 다가와 수분을 하고 씨앗을 생산하고 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마치면 헛꽃은 몸을 비틀어돌아섭니다. 수분 매개자를 유인하는 데 최적화된 형태를 유지하다가 참꽃들이 수분을 마치면 헛꽃은 자신의 존재감을 줄이거나 시들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헛꽃이 시들거나 건조해지면서 원래의 형태를 잃고 비틀리거나 뒤틀린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역활을 다하고 뒤로 물러나는 우리의 인생을 마주하는듯 합니다. 이렇듯 식물의 지혜를 보면 미무로토지의 신토와 사찰의 혼불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3월에 템플스테이에 다녀 온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한 통도사에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로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찰입니다. 그 통도사의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넘으면 왼편에 산신각을 갖추고 있습니다. 산신에게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공간입니다. 혼불은 아니지만 불교에서 민간신앙을 수용한 모습의 한 형태입니다. 겉모습에서 많이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소극적 수용이라면 일본의 수용은 불교와 함께 융합이 된 형태로 느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그렇게 해서 불교의 선은 더 깊고 아름다운 가레이산스이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붓다의 주인의식을 깨닫는다면 무엇인들 받아들이지 못할것이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혼불은  고귀한 모습을 하고 제국주의를 숨기고 있는거 있는거 아닌가하는 우려는 카테고리의 미스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제국주의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다만,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불교를 소중히 지키고 있는 신심 깊은 불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무로토지

 

순례 전 기도를 떠올리며 

 

나는 지금 떠납니다.

익숙한 하루를 잠시 접고

익숙했던 내 마음도 조용히 접어

한 장의 나그네 마음으로 길 위에 섭니다.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르고

무엇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키우는 선물임을 믿습니다.

돌 위에 핀 이끼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한 그루

그 앞에 선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소서

누군가의 기도에 깃든 절터에 머물며

천년을 바라 본 부처의 눈길을 기억하게 하소서

걸을 때, 앉을 때, 묵묵히 바라볼 때에도

마음속에

"이 순간이 전부입니다"

라는 속삼임을 품게 하소서

무사히 걷게 하소서

깊이 느끼게 하소서

그리고 다시

이 삶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모든 걸 안고 돌아오게 하소서

이 길이

곧 나를 향한 길이 되게 하소서

 

미무로토지의 수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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