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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의 영화글쓰기

<탑> (2022.홍상수)

by 쌍차쌍조 2025.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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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무심한 듯 보이지만, 실은 지극히 정제된 감각으로 삶의 결을 포착합니다. 그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예기치 않게 흔들리는 감정의 결, 그리고 관계의 파동을 유려하게 끌어올립니다.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하하하》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도망친 여자》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에서 꾸준히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그는 2020년대에 들어서며 《소설가의 영화》(2022), 《탑》(2022), 《여행자의 필요》(2024) 등을 통해 작가주의 영화의 정점에 선 채, 해마다 1~2편씩 영화를 만들어내는 거의 유일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미리 정해진 대본 대신 즉흥적인 대사, 간결한 공간, 반복적인 숏과 줌, 단순한 음악과 기법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의 영화는 갈수록 시간성과 존재, 관계의 조건을 깊이 탐색하는 실험의 형식을 띱니다.

이번 글에서 저는 최근작 《탑》과 《소설가의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를 중심으로, 들뢰즈의 영화철학, 그중에서도 ‘시간-이미지’와 ‘차이와 반복’, ‘되기’ 개념이 어떻게 홍상수의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탑》에서는 고정된 공간인 절에서 반복되는 인간관계와 대화가 이어지며, 동일한 인물처럼 보이는 병수는 한 명이면서 여러 명, 사실이면서도 환상인 존재로 흩어집니다. 시간은 순차적 흐름이 아니라 정지된 순간의 겹침이며, 그 안에서 인물들은 반복하면서도 매번 다르게 '존재'합니다.

《소설가의 영화》에서는 창작의 과정 자체가 시간의 꼬임과 되기의 리듬으로 구성되며, 《당신 얼굴 앞에서》는 죽음을 앞둔 자의 시간 감각이 인물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분리하면서도 다시 이어지게 합니다. 이 세 작품은 들뢰즈가 말한 비선형적 시간성과 탈인격적 주체, 그리고 크리스탈 이미지의 파열적 중첩을 형식과 서사의 수준에서 실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따라서 이 글은 단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화가 어떻게 들뢰즈의 철학을 ‘살아 있는 이미지’로 구현하고 있는가를 사유해보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반복되지만 같지 않고,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그 세계 안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영화란 무엇이고, 삶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탑의 구조 다층의 시간

🌿 영화 <탑>의 구조 

무심한 반복 속의 진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무심한 듯 심대한 순간을 포착합니다. 겉보기엔 별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정체성의 균열이 드러나고 감정의 결이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탑》 역시 그러합니다. 고작 한 건물 안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시며, 걷고, 흩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반복 속에 관객은 감정의 변주를 감지하게 됩니다. 홍상수의 세계는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사유와 감각이 어긋나며 겹쳐지는 장이며, 이는 곧 들뢰즈가 말한 ‘시간-이미지’의 영화적 장치와 맞닿아 있습니다.

탑이라는 다층의 시간

영화는 병수가 한 건물의 1층부터 4층까지를 오르내리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입니다. 각 층마다 병수는 같은 인물이면서도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마치 ‘지금 여기’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그의 얼굴, 말, 표정은 거의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반복됩니다. 들뢰즈는 이런 시간의 구조를 ‘크리스탈 이미지’라 불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과거가 중첩되고, 기억이 현재를 침범하는 이미지. 병수는 자신을 반복하지만, 매번 똑같지 않습니다. 그는 사랑을 고백하려 하지만 늘 타이밍이 어긋나고, 그의 고백은 상대에게 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실패조차 다시 살아내려는 ‘되기의 시간’이 그를 이끕니다.

 

점프컷과 반복 속의 차이

《탑》의 편집은 과감합니다. 시퀀스가 바뀔 때마다 병수는 비슷한 장소, 비슷한 대화 속에 놓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표정과 리듬을 지닙니다. 그 변화는 점프컷을 통해 표현됩니다. 화면이 갑자기 바뀌며 장면이 전환될 때, 관객은 무엇이 바뀌었는지 정확히 짚을 수 없지만, ‘같지만 다른’ 감각을 체험하게 됩니다.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말한 것처럼, 반복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미세한 차이를 동반하는 생성의 사건입니다. 병수는 다른 인물들과 같은 말을 나누지만, 그 말 속의 진심은 매번 다르게 울립니다. 반복 속에서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가 바로 존재의 흔들림을 드러냅니다.

사랑이라는 되기의 구조

병수는 영화의 마지막에 말합니다. “나는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이야.” 이 고백은 단념일까요, 혹은 또 다른 결심일까요? 들뢰즈는 ‘되기’를 정체성이 고정되지 않는 운동이라 보았습니다. 병수는 하나의 고정된 인물이 아니라, 반복되는 시간과 감정의 층위를 지나며 조금씩 변해가는 존재입니다. 그는 매번 사랑을 시도하고, 실패하며, 다시 사랑을 감각합니다. 그 반복은 진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감정은 더 투명해지고, 더 진실해집니다.

《탑》은 결국 하나의 철학적 질문을 영화적으로 실험하는 작품입니다. 사랑은 왜 반복되는가? 우리는 왜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다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가? 들뢰즈는 말했습니다. “반복이란 창조이며, 차이는 삶이다.” 병수의 반복은 삶을 다시 살아내는 창조의 몸짓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그 조용한 몸짓을 통해, 들뢰즈의 철학을 감정의 언어로 번역해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화 속에서,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어떤 울림과 조우하게 됩니다.

 

🌿 문학과 영화, 그 경계를 허무는 사유의 흐름

 

홍상수 감독의 2022년작 《소설가의 영화》는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문학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과 삶의 감응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주연을 맡은 이혜영, 김민희, 권해효 등은 각기 다른 예술의 얼굴로 분해된 인물들을 연기하며, 창작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그 불완전한 흐름 속에서 피어나는 진심의 순간들을 전합니다.

카메라는 단순하고도 조용한 하루를 따라가며, 관객을 예술이라는 거울 앞에 세웁니다. “삶은 곧 예술이다.” 이 영화는 소설가가 영화감독이 되어 여배우와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관객이 창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사유하도록 초대합니다. 우연한 만남, 흔들리는 감정, 반복되는 대사 속에서 영화는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처럼 현실과 상상, 말과 침묵, 과거와 현재를 뒤섞으며 예술의 ‘되기’를 조용히 실현합니다.

《소설가의 영화》는 얼핏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중년의 소설가가 잠적한 후배의 책방을 찾아가고, 우연히 만난 영화감독 부부와 대화를 나누고, 공원 산책 중 배우를 만나 그녀와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습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 이어지는 장면들. 하지만 그 비어 있는 공간 속에서, 말해지지 않은 문장들 사이에서 관객의 마음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어떤 목적이나 뚜렷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말하고, 걷고, 차를 마시고,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그 순간들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그 느슨한 흐름 속에서 관객은 문득, 깊은 감정의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그건 화려한 장면이나 극적인 대사 때문이 아니라, 마치 일상의 우연한 대화 속에서 갑자기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 속 어딘가에서 경험했을 법한 감정의 파동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중심 인물인 소설가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자신이 만난 여배우에게 ‘영화를 찍자’고 제안합니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글도 마음처럼 써지지 않지만, 이 소설가는 멈추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자신이 진심을 느낀 사람과 함께, 아주 짧은 영화라도 만들고 싶다는 그 조용한 결심은, 관객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그 짧은 영화는 사실 하나의 이야기나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분위기, 감정, 마음을 담은 작은 영상 시처럼 느껴집니다. 주연배우 김민희는 극 중에서도 배우로 출연해, 꾸미지 않은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관객은 그 눈빛 속에서 설명되지 않은 마음을 읽어내게 됩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 때, 그것을 꼭 완벽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든 창작이든, 삶의 선택이든, 때로는 다짐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조용한 다짐, 말보다는 마음의 움직임을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또한 이 영화가 인상 깊은 이유는, 어떤 인물의 ‘성공’이나 ‘실현’보다,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진심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지 않고, 배우는 스타가 되지 않으며, 만들어진 영화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미완’의 상태가 오히려 진짜 삶처럼 느껴집니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진실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감정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도 그렇게 완벽하지 않기에 더 진심일 수 있습니다.

《소설가의 영화》는 보통의 영화처럼 큰 사건이나 뚜렷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지만, 오히려 그 ‘비어 있음’ 속에서 감정이 자라고, 창작의 시작이 움트며, 삶의 온기가 전해집니다.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조금 더 자기 삶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어떤 화려한 이야기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당신 얼굴 앞에서

홍상수 감독과의 거리, 그리고 그 시간의 깊이. 결말을 쓰지 못한 채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를 보았습니다.감독의 영화 세계가 지향하는 근원은 어렴풋이 느꼈지만, 끝끝내 닿지 않는 감정의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쓰다가, 보다가 잠들고, 또 보다가 잠들고… 왜 그리 졸음이 쏟아졌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 얼굴 앞에서》는 배우 상옥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죽음을 앞두고 타향살이에서 돌아온 상옥은 조카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여동생과 일상을 보내고, 오랜 지인의 제안을 받고, 조용히 술잔을 기울입니다.그 모든 장면은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결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결정적인 마음’이 흐릅니다. 상옥이 떡볶이 자국을 옷깃에 묻히고도 말없이 넘어가는 장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감춰두고 싶은 무언가의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끝내 숨길 수 없는 것은 ‘더 살고 싶다’는 욕망—바로 그 본능적이고 필연적인 생의 충동이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이전 영화들이 반복 속의 차이를 이야기했다면, 이 영화는 오직 **‘지금 여기’**의 시간에만 집중하려는 인물, 그리고 그 시간으로부터 계속 미끄러져 나가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상옥은 말합니다.
“내 얼굴 앞의 모든 것은 은총입니다. 다만 이 순간만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순간에 끝내 머물지 못합니다.
과거를 떠올리고, 죽음 이후를 상상하고, 누군가의 음성 메시지를 통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그녀의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현재를 살고 싶어 카페에 왔는데, 과거 이야기를 하며 웃고, 미래의 아파트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정말 지금을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은 결국 저를 향하게 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미디어센터 정기 상영에서 아무 준비 없이 마주했던 몇 달 전, 그때는 솔직히 ‘괜히 왔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탑》을 보고, 《소설가의 영화》를 헤매듯 지나고, 《당신 얼굴 앞에서》까지 오며,
어쩌면 저는 지금 ‘그때 보지 못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감정이입을 피하려 해도 어느새 들여다보게 되는 자신의 내면, 지루하다고 외면했던 장면 속에서 되려 마음을 건드리는 침묵의 무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시간처럼 흘러갑니다. 그 시간은 곧 나의 삶이고, 나의 태도이며, 나의 욕망입니다. 보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것이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 닿지 않음조차 하나의 감상이 된 것 같습니다.

 

🍁 지금, 여기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어렵다는 생각, 그저 반복되는 대사와 움직임의 나열이라는 편견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보게 된 《소설가의 영화》, 그리고 평론 글쓰기 수업을 통해 마주한 《탑》, 마지막으로 깊은 숨결처럼 다가온 《당신 얼굴 앞에서》는 저를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영화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쳐버리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이었습니다. 《당신 얼굴 앞에서》는 죽음을 앞둔 한 여자의 고요한 하루를 통해, ‘지금’이란 시간이 얼마나 흔들리고 소중한지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우리는 종종 대화를 나누면서도, 지금 이 자리의 온기보다는 과거의 이야기나 미래의 걱정으로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그 어떤 회상도, 그 어떤 계획도, 죽음을 앞둔 자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 닿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지금 먹는 떡볶이의 맛, 지금 바라보는 얼굴의 온기, 지금 이 마음의 떨림. 그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전부이자,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영화는 단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처럼 느껴집니다. 그 얼굴 앞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연습.
아마도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진심 어린 인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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