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감독 팟 분니티팟(Pat Boonnitipat)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 일상의 행복을 모티브로 감상해보겠습니다. 엠이 암 말기 할머니의 유산을 받기 위해 간병을 하면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의 일상화입니다.
소확행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라이프 스타일 트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확행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입니다. 거창하고 큰 목표를 추구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작고 확실한 행복을 누리며 만족감을 느끼는 삶의 태도나 경향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향기로운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산책, 햇볕 잘 드는 창가에서 책 읽기,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퇴근 후 반려견과 교감하기 등 다양합니다. 엠이 할머니 집에 처음 방문하던 날의 장면은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에게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의 맛이 느껴지게 합니다.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청량감이 느껴지는 소리와 비닐로 싼 석류 열매에 맺힌 빗방울은 보고 듣는 감각을 깨웁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발간한 수필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사용한 신조어입니다. 당시 하루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을 소확행의 예시로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에 걸쳐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저서 [트랜드 코리아 2018] 에서 올해의 소비 트랜드 중 하나로 '소확행'을 선정하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행의 배경에는
-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취업난, 주택 문제 등 청년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크고 불확실한 행복(내 집 마련, 성공적인 취업, 결혼)을 좇기보다는,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작은 행복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입니다.
- 워라밸(Work Life Balance) 중시 경향: 이전 세대보다 개인의 삶과 행복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일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했습니다.
-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 문화의 진화: '한 번뿐인 인생,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 문화가 소비 지향적이고 때로는 과도한 지출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다면, 소확행은 더 작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실현 가능성이 높은 형태입니다. 욜료가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면, 소확행은 일상 속 만족에 가깝습니다.
- 미디어의 영향: 예능 프로그램이나 SNS 등에서 소확행을 추구하는 연예인이나 일반인들의 모습이 노출되면서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습니다.
- 개인의 취향과 만족 중시: 남들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비록 작더라도 자신에게 확실한 기쁨을 주는 것에 소비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 자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일본어에서 유래했지만,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은 일본, 한국, 유럽 등의 나라에서 유사한 개념들이 존재합니다.
- 일본: 원조 '소확행' 개념을 가진 나라로, 버블 경제 이후 청년 세대 사이에서 '사토리 세대'처럼 큰 욕망 없이 현재의 작은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 유럽: 북유럽 국가의 '휘게', '라곰' 등은 소박하고 아늑한 삶 속에서 편안함과 만족을 찾는 문화를 의미하며 소확행과 유사한 맥락을 가집니다. 프랑스의 '오캄'도 평온함을 추구하는 삶을 뜻합니다.
- 서구권: Self -care나 mindfulness 등 자신을 돌보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여 작은 기쁨을 찾는 개념들도 소확행과 같은 의미입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유래하여 한국에서 크게 유행한 특정 용어이지만, 그 본질인 일상의 작은 행복 추구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각 나라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문화적 특성에 따라 그 표현 방식이나 구체적인 모습에서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죽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은 태국 사회의 가족상, 세대간의 소통, 삶과 죽음의 성찰, 손자 엠의 성장 서사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할머니가 말기 암으로 확진 받은후 유산에 대한 형제들간의 욕망과 경쟁 그리고 갈등안에 숨겨진 가족 간의 애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아들을 편애하는 모습, 자식들이 보이는 다양한 태도들이 현실적인 가족 관계를 반영하며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할머니의 시한부 삶은 영화 전반에 걸쳐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사랑하는 이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등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할머니와 손자 엠의 관계는 서로 다른 세대가 어떻게 소통하고 이해해나가는지를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가치관 속에서 어른과 젊은 세대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거창한 사건보다는 할머니와 엠이 함께 밥을 먹고, 시장에 가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소소한 순간들을 통해 감동을 선사합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행복과 사랑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태국 영화로서 태국 사회의 독특한 가족 문화나 장례 문화, 유산 상속 방식 등을 언급하며 영화의 배경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할머니의 집 앞 석류 나무에 열린 열매는 누구의 것일까?
엠이 할머니 집 앞 석류 열매가 비닐에 싸여 빗방울이 맺힌 모습과 함께 오프닝 타이틀이 등장합니다. 영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이례적입니다. 영화 제목이 등장하기까지 여러 장면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와 비교했을 때 비전형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는 관객의 몰입을 빠르게 유도하기 위해 영화 시작 후 1~2분 내외, 즉 첫 장면이나 두 번째 장면에서 제목을 노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은 여러 장면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준 후에 등장합니다.
- 공동묘지 장면: 죽음과 유산이라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암시합니다.
- 병원 장면: 할머니의 병, 시한부 삶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 엠의 집에서 할머니 병을 알게 되는 장면: 엠에게 엄마가 할머니의 병을 이야기 합니다.
- 엠이 무이의 호출을 받고 할아버지를 돌보는 장면: 에이 간병인이 되는 계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유산에 대한 구체적인 동기를 제공합니다.
- TV 모델의 워킹 화면에서 할아버지 장례식 장면으로 점프컷: 엠의 현재 삶과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유산 문제를 빠르게 대비시킵니다.
- 할아버지의 상속: 집을 무이에게 남겼다는 것은 엠이 유산을 얻기 위해 더욱 절박해지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합니다.
- 비 내리는 태국 거리 풍경: 엠이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여정, 새로운 국면의 시작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 할머니 집 앞 석류 열매: 할머니의 삶, 정성, 그리고 이후 엠이 마주할 진정한 가치를 상징하며 그제서야 영화 제목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긴 시퀀스 후에 제목을 노출하는 것은 감독의 의도적인 선택이며 그에 따른 효과를 분석해봅니다.
- 스토리라인의 빠른 도입 및 배경 설정: 영화 제목이 뜨기 전 이미 주인공 엠의 상황, 할머니의 병, 그리고 엠이 할머니 집에 가게 되는 결정적인 동기까지 모든 주요 배경과 동기가 설명됩니다. 관객은 제목이 뜨기 전에 이미 영화의 큰 줄기와 주인공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는 이후 전개될 이야기의 개연성을 확보하고 관객이 엠의 여정을 따라갈 준비를 마치게 합니다.
- 주인공 엠의 시점 몰입 유도: 관객은 영화 시작부터 엠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의 상황과 감정 변화를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제목이 늦게 등장함으로써 관객은 영화의 사건에 먼저 집중하게 되고, 엠이 왜 수백만 달러를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됩니다.
- 제목의 상징성 강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이라는 제목은 엠이 할머니에게 가는 명확한 목적을 드러냅니다. 이 제목이 할머니 집 앞 석류나무 장면에서 등장하는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엠은 돈을 목적으로 왔지만, 결국 그가 얻게 될 '수백만 달러'는 단순한 현금이 아닌 할머니와의 관계, 가족의 의미, 그리고 살의 진정한 가치임을 암시합니다. 석류나무의 정성과 생명력, 그리고 낡은 집이 주는 편안함은 엠이 앞으로 깨닫게 될 진정한 가치를 미리 보여주는 복선이 됩니다. +
- 관객의 흥미 유발 및 긴장감 조성: 일반적인 패턴을 벗어남으로써 관객은 "제목은 언제 나오지?" ,"이 영화는 어떤 내용일까?"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는 오히려 영화에 대한 호기심과 집중도를 높이고 이야기에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이례적인 방식이지만, 이는 감독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 주인공의 동기, 스토리의 심층적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이고 계산된 연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과 주제를 미리 암시하는 중요한 예술적 장치인 셈입니다.
할머니 집 앞의 석류 열매를 둘째 아들 소이가 따려고 할 때 "그건 네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합니다. 석류 나무는 영화의 말미에 엠이 태어났을 때 심은 나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엔딩에서 할머니의 죽음과 병치되어 열매가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석류 열매는 누구의 것일까요?
할머니의 정성과 삶의 결실
- 할머니가 석류 열매를 비닐로 싸서 정성껏 가꾸는 모습은 할머니의 삶의 방식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고 보살펴 온 할머니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에 대한 결실을 상징합니다.
- 둘째 아들 소이에게 "네 것이 아니야" 라고 한 것은 그 열매가 물질적 소유물이 아니라 할머니의 시간, 노력, 그리고 무형의 사랑이 담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그 정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열매'라는 결과물만을 취하려 했기에 할머니는 이를 거부한 것입니다.
엠에게 전해지는 유산
- 영화 초반, 엠은 유산을 목적으로 할머니에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시간을 통해 그는 진정한 유산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 관계 그리고 삶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 할머니가 숨을 거두는 순간, 석류 열매뿐만 아니라 꼭지까지 떨어지는 장면은 할머니의 삶이 끝나면서 그 결실이 이제 엠에게로 전해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엠은 할머니의 정성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깨달았기에 비록 열매의 물리적 소유자가 아닐지라도 그 열매가 상징하는 할머니의 사랑과 삶의 지혜를 진정으로 물려받는 인물이 됩니다.
가족 모두의 것, 그러나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것
- 석류는 많은 씨앗을 품고 있어 다산과 자손의 번영을 상징합니다. 할머니가 중국계라는 설정은 영화에서 석류 열매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 문화권에서 석류는 매우 상징적인 과일이기 때문입니다.
- 소이가 소유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엠은 소유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이는 진정한 사랑과 유산은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고 계승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열매는 결국 떨어져 다시 생명으로 돌아가듯이 할머니의 사랑은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닌 가족이라는 큰 틀에서 계속 이어지는 순환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할머니의 중국계 배경과 석류의 의미
중국 문화 속 석류의 의미
- 다산과 번영: 석류는 수많은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자손 번창과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결혼식이나 신혼부부에게 석류 그림이나 장식을 선물하는 것은 자녀를 많이 낳고 가정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늘 애정을 쏟고 가족의 안녕을 바랐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의미는 할머니의 바람과 맞닿아 있습니다.
- 화합과 단결: 많은 씨앗이 하나의 껍질 안에 모여 있는 모습은 가족의 화목과 단결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하나로 모이고, 서로를 아끼며 화합하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석류에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 길상과 행복: 석류는 아들을 바라는 기원의 의미와 돈을 담아온다는 관념과 함께 복을 부르는 풍요의 상징물로 여겨집니다.
영화 속 석류와 할머니의 중국계 배경
- 문화적 유산의 상징: 할머니는 태국에 살고 있지만 중국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석류나무는 태국 가정집의 풍경에 할머니가 간직하고 있는 중국 문화적 전통과 가치관을 상징합니다. 가족의 중요성과 번영에 대한 염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유산의 코드로 보여집니다.
- 자식과 손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할머니가 석류를 정성껏 가꾸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적인 소확행을 넘어, 자식들이나 엠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가족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헌신을 보여줍니다. 이는 중국 문화에서 가정과 혈육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가치와도 연결됩니다. 소이에게 "네 것이 아니야"라고 말한 것은 그가 석류가 상징하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물질적인 소유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 소이에게 집을 넘기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엠은 진정한 사랑을 느낍니다. 이때 석류 열매의 상징성이 극대화됩니다. 물질적인 유산은 소이에게 가지만, 할머니의 무형적 석류 열매는 할머니의 진정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 엠에게 전달됩니다.
"너도 나중에 수확할 씨를 뿌리고 있는 거지?"
영화<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에서 할머니의 신발은 엠과 할머니의 관계 변화와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핵심 오브제입니다. 장남 끼양이 어릴 적부터 다니던 절에서의 에피소드는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엄마, 아들이 엄마를 모셔야 한다고 배웠어. 엄마, 나 자식 노릇하고 싶어."
장남 끼양은 이 말을 하며 어릴 적부터 다닌 절로 할머니를 모시고 가족과 함께 기차 여행을 합니다.
절 법당 안에서 기도하는 끼양의 가족을 전면에 그 너머 뒷편에 할머니와 엠을 배치한 구도는 영화의 시각적 언어가 얼마나 섬세한지를 보여줍니다. 끼양의 가족이 법당 안에서 함께 기도하는 모습은 겉으로는 가족의 단합과 효심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엠의 초기 시각, 즉 가족들이 유산 때문에 할머니에게 형식적으로 잘하는 모습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기도가 과연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자식 노릇인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법당 밖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엠은 물리적으로 뒷편의 배경으로 보여지지만, 할머니는 가장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는 물리적 거리가 감정적 거리와 일치하지 않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관계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형성되는 진정한 유대감이 더 깊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할머니가 정작 자신의 아들 가족이 기도하는 법당 안에 함께 들어가지 않고 밖에 머무는 것은, 할머니가 가족 안에서 느끼는 미묘한 소외감이나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확실성을 은유할 수 있습니다. 끼양이 장남으로서 자식 노릇을 한다면서 보살핌을 받는 듯 보이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할머니의 내면을 비춥니다. 동시에 할머니는 엠에게 과거 끼양의 신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의 존재와 사랑은 가족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끼양이 어릴 때 할머니와 기도를 마치고 나오면 끼양의 신발이 없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끼양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어 집까지 신고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할머니의 대사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으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같은 날씨와 딱 맞아떨어지는 대사입니다.
"그날은 오늘처럼 햇빛이 강렬한 날이었어, 바닥도 오늘만큼 뜨거웠지"
오늘 같은 날씨 이 뜨거운 바닥을 자식을 위해 신발을 벗어주고 맨발로 걷는 할머니의 마음이 뜨겁게 느껴집니다. 할머니가 평생을 바쳐 자식들을 보살펴 온 헌신적인 사랑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이거, 끼양 삼촌이 사준 신발이었어?"
엠의 질문에 할머니는 불편해도 고집스레 신어 온 신발의 의미에 옅은 미소로 답을 합니다. 할머니의 신발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의 발자취이자 그 사랑이 엠에게도 전달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됩니다.
기도를 마치고 소원을 적어 붙이는 장면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이기심과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엠의 변화 과정을 극병하게 대비시키는 중요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할머니는 자식들의 번영을 비는 반면 끼양의 가족은 할머니에 대한 기도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소원 속에는 할머니에 대한 진심 어린 염려나 사랑이 부족함을 암시합니다. 이는 유산 문제에 얽힌 가족들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소원을 적은 종이를 붙이고 돌아서서 가는 엠이 할머니에게 못마땅한 속내를 전달하는 대사는 할머니의 심경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할머니는 삼촌의 진짜 가족이 아니야, 삼촌은 나중에 수확할 씨를 뿌리고 있는 거야."
카메라는 이 대사를 하고 멀어지는 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를 미디엄 클로즈업으로 보여줍니다. 이 촬영 기법의 효과는 할머니가 엠의 물리적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에서 엠이라는 인물의 본질과 그가 앞으로 겪을 변화를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 있는 시선을 표현합니다. 클로즈업이 순간적인 감정에 집중한다면 미디엄 클로즈업은 엠이 사라진 후 할머니의 시선으로 집중되면서 할머니의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엠의 말이 할머니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할머니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엠이라는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복합적인 감정이 무엇인지를 오롯이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기차 안의 장면에서 자주 오가는 기찻길 옆 다리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이 장면에서 할머니가 발이 아프다며 신발을 바꿔야겠다고 말합니다. 기차는 여행이자 삶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기찻길 옆의 다리를 로우 앵글로 촬영하여 다리의 거대한 구조물을 올려다보며 웅장함을 강조합니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종종 새로운 여정,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거나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이제껏 지녀온 고집이나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신어 온 신발을 바꾸겠다는 심경의 변화를 강조하는 촬영기법입니다.
"너도 나중에 수확할 씨를 뿌리고 있는 거지?"
"손자 노릇을 하고 싶어! 끼양 삼촌과 같아."
"이런, 거짓말쟁이 ... "
할머니의 신발을 바꾸기 위해 온 신발가게의 장면은 할머니와 엠 관계의 심화, 엠의 내적 갈등, 할머니의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 영화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문득 알아차리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할머니의 신발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오브제로 기능합니다.
엠이 불편한 신발을 걱정했음에도 굳이 고집스레 신어왔던 할머니가 여행에서 돌아와 신발을 바꾸겠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육체적 불편함이라기 보다는 할머니에게 소중한 존재의 서열이 바뀌는 타이밍을 은유합니다.
할머니는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희생을 감수해왔고, 불편한 신발은 어쩌면 그런 할머니의 오랜 삶의 방식과 고독함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곁에서 진심으로 다가가려 노력하자 할머니는 엠의 마음을 받아줍니다.
할머니가 엠을 위해 빈 소원은 엠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할머니 세대가 자식이나 손자의 행복을 바라보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고 안정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반면 엠이 원했던 것은 편안하게 큰 돈을 버는 일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두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와 엠의 물질적 욕망이 드러납니다.
할아버지를 간호하여 집을 상속받은 사촌 무이가 엠에게 가르쳐 준 접근 방식은 시간이었습니다. 자식들은 주지 못하는 것을 손자인 우리는 줄 수 있는 것 시간. 이는 태국의 시대상을 비추는 대목이기도 하고 취직이 어렵고 일이 없는 젊은 세대와 자신의 삶에 바빠 부모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자식 세대의 현실이 교차합니다.
엠은 무이가 가르쳐준 대로 겉으로 노력했지만, 할머니 곁에서 일상을 함께 지내고 보면서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엠은 자신이 처음 의도했던 수백만 달러가 무엇인지, 할머니에게서 얻게 될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이런 거짓말쟁이..." 대사에는 할머니의 자비한 사랑이 함축적으로 담겨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과 감동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은 일상적인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섬세한 구조를 가집니다. 청명절 가족묘 앞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묘로 다시 돌아오는 엔딩까지 할머니와 손자 엠이 함께 보낸 1년의 시간을 따뜻하게 담아냅니다.
영화 속에서 사촌 무이는 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으며 어르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시간이라는 점을 엠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조언에 따라 엠은 처음에는 무이처럼 할머니의 집을 상속받기 위해 할머니 곁으로 다가갑니다. 할머니를 찾지 않던 장남 끼양의 가족들이 뒤늦게 찾아와 함께 기차 여행을 하는 모습, 도박으로 허덕이는 차남 소이에게 할머니가 주택권리증을 주는 장면은 엠에게 실망을 안기지만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전체에 깊이 흐르는 따뜻한 정서는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이 결국 가장 큰 행복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나중에 수확할 씨를 뿌리는 거지?" 이 질문은 장남 끼양도, 손자 엠도 아닌 바로 할머니였음은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 명확해집니다. 가족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 서운함에 비싼 개인묘에 묻히고 싶어 했던 할머니의 바람은 , 죽어서라도 자식과 손자들이 더 자주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애틋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는 엔딩을 앞두고 엠이 할머니가 남긴 통장을 손에 든 채 기찻길을 카메라가 돌면서 엠의 어린 시절로 플래시백됩니다. 그 속에서 할머니는 시험에서 1등을 했으니 1년동안 저금을 넣어주겠다고 합니다. 어린 엠은 할머니가 죽을때까지 넣어달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그 돈을 무엇에 쓸 거냐는 질문을 하고 엠은 할머니의 집이 너무 낡아서 새 집을 사주겠다고 대답합니다. 할머니는 "이런 거짓말쟁이..." 하며 엠의 손을 잡고 기찻길을 따라 멀어집니다.
엠이 그토록 원하던 수백만 달러는 이미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저금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엠과의 약속을 평생 지키셨던 것입니다.
이 영화의 깊은 정서와 엠의 성장은 저에게도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13년 전 어머니의 암 확진 소식을 들었을 때 엠과 같은 1년의 시간을 지낸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요양원을 마다하고, 동생 집에서도 불편해 돌아오신 어머니를 위해 저는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어머니 곁을 지켰습니다. 엠이 할머니의 일상에 녹아 들어 시장에 함께 가고 응애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어머니와 함께 시장 골목을 매일 산책처럼 다녀왔었으니까요. 그곳은 어머니의 평생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었기에 죽음을 앞두고도 일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어머니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눈물을 아무데서나 흘리던게 엊그제 같은데 13년이라는 세월은 미소를 띄울 수 있게 합니다. 어머니에게 1순위이고 싶었던 마음때문에 사촌 동생과 다투기도 했던 시간을 돌아 보면 어머니에게 제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던 기억입니다.
통장을 발견하고 잔고를 확인하던 엠에게 찾아온 플래시백은 마치 시간을 멈추는 듯한 쉼포를 부여합니다. 이 순간의 엠은 돈보다 소중한 기억과 감정이 존재함을 상기하게 됩니다. 이는 영화의 주제인 물질적 유산과 정신적 유산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역활을 합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이라는 동일한 공간을 활용하여 현재와 과거를 매끄럽게 연결하고, 관객이 엠의 내면 변화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도록 이끄는 연출은고전적인 내러티브 구조의 힘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영화일뿐, 새로운 영화 감상법을 배우면서 고전적인 영화에 감정이입하여 눈이 짓무르도록 울지 않는 저의 변화를 문득 마주했습니다. 성장일까, 세월에 단단해진 성숙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치유 글쓰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객관적인 글쓰기로 향하는 저의 플래시백을 이 영화를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고 느낀 감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고, 치유글쓰기의 효과를 경험했습니다. 영화평론글쓰기는 어떤 새로운 경험이 될지 모르지만 시작했고 두가지의 넘기 어려운 장벽을 만났습니다. 내 개인의 감정과 비슷한 결의 영화를 선택해서 감상하고 쓰는 글이 아니라 영화의 이론이나 철학을 공부하고 체계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가지 장벽은 영화 이론에 무지해서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한가지는 치유글쓰기의 무작정 쓰기가 아니라 분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번 째의 문제는 공부를 하면서 다소 완화되고 관점을 달리 하고 확장적으로 세상 읽기를 하게 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두번 째의 문제가 걸림돌이 아직도 되고 있습니다.
치유글쓰기는 무의식을 에고의 검열 없이 즉석밥으로 지어내는 것이라면 평론글쓰기는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 보고 또 보고 장면과 장면을 분석하며 글을 써야 하는 뜸을 오래 들여야 하는 솥밥이랍니다. 즉석밥을 짓는게 쉬울지, 솥밥을 짓는게 쉬울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의 성향으로는 솥밥을 더 잘 짓는 스타일입니다만 솥밥에는 누룽지가 반드시 생깁니다. 여기서 누룽지는 감정의 찌꺼기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영화를 저의 일상에 들여 놓고 즉석밥으로도 지어보고 솥밥으로도 지어 보면서 누룽지도 맛보는 소확행을 누려봅니다. 글을 쓰다보면 언제나 마지막 문단의 마무리가 어렵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빨리 맺음을 하고도 싶고 완벽하고 싶기도 한 미숙한 글쟁이입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의 힘은 빼기로 하고 영화를 공감하는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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