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어려운 이유는 이야기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익숙한 이해의 방식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영화는 설명해주고, 원인을 알려주고, 감정을 정리해줍니다. 라캉의 말처럼, 상징으로 포획되지 않는 어떤 것, 그러니까 실재의 영역에 가까이 가 있습니다.
영화 정보
감독이 태국 출신이고, 국제 공동 제작 구조를 갖고 있어서 여러 국가 이름이 함께 언급되곤 하지만, 촬영지·이야기의 공간·제작의 중심은 콜롬비아에 놓여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아피찻퐁 감독이 처음으로 태국을 떠나 만든 작품입니다.
제목 메모리아
제작연도 2021년
제작국가 콜롬비아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예술영화
러닝타임 136분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주연 틸다 스윈튼
수상 2021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감독 정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태국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현대미술 작가입니다. 그의 영화는 이야기보다 감각과 시간, 기억과 꿈의 상태에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인과관계가 분명한 서사보다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오래 응시하게 만듭니다.
대표작으로는
엉클 분미
열대병
찬란함의 무덤
블리스풀리 유어스
등이 있습니다. 서사가 빠져나가고, 대신 잠, 정글, 유령, 기억, 소리, 반복되는 시간 같은 요소들을 보여줍니다. 그의 영화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존재의 상태를 보여주려는 쪽에 가깝습니다.
메모리아는 그런 아피찻퐁의 영화 세계에서 조금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태국을 떠나 처음으로 해외에서 만든 작품이고, 처음으로 서구 배우인 틸다 스윈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리듬과 태도는 여전히 그답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기다리게 하고, 이해보다 감각을 먼저 통과시킵니다. 메모리아가 어렵게 느껴졌다면, 그건 이 감독이 특이해서가 아니라 일관되게 같은 영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같은 질문을, 같은 방식으로, 아주 느리게 던져왔습니다.

줄거리
메모리아는 콜롬비아에 머무는 여성 제시카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새벽, 그녀는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폭발음 같기도 하고, 금속이 울리는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이후에도 반복해서 그녀의 일상에 스며듭니다.
제시카는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음향 스튜디오를 찾아가고, 사람들을 만나며, 도시와 정글을 오갑니다. 하지만 소리는 설명되지 않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대신 제시카의 기억과 감각, 과거의 흔적들이 조금씩 현재의 시간과 겹쳐지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에는 분명한 사건의 해결이나 명확한 결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시카가 듣는 소리는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고, 관객은 그녀와 함께 이해하지 못한 채 머무르게 됩니다. 메모리아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라기보다, 한 사람이 어떤 기억과 소리를 몸으로 감당해 가는 과정을 감상하는 영화입니다.
제시카가 처음 만나는 에르난은 음향 전문가와, 후반부에 정글에서 만나는 인물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은 우연처럼 지나가지만, 그 이름을 크게 강조하지도, 의미를 설명하지도 않습니다만 같은 이름을 반복합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시간 속 인물인지, 기억의 층위에서 다시 만난 존재인지, 혹은 제시카의 감각이 만들어낸 어떤 접점인지도 열어 둡니다.
에르난과 함께 소리를 재현되는 순간 제시카는 눈물을 흘립니다. 소리가 어디서 왔는지, 왜 들리는지보다 그 소리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워집니다. 이해가 아니라 수용의 태도입니다. 제시카는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알아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반면 관객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남겨집니다.
이 차이가 바로 메모리아의 핵심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깨달음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고, 어떤 기억은 설명되지 않아도 몸에 남아 있다는 감각을 느낌으로 보여줍니다.
감상 포인트
우리는 보통 세계를 언어와 의미, 즉 상징계로 이해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에는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고, 결말이 있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메모리아의 소리는 이 질서에 속하지 않습니다. 제시카가 아무리 음향 전문가에게 설명해도, 아무리 비슷한 소리를 재현해도, 그 소리는 완전히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구조입니다.
이때 떠올리면 좋은 라캉의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실재는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반복된다는 말입니다. 메모리아의 소리는 바로 이 반복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제시카에게도, 관객에게도요.
중요한 힌트는 후반부에 있습니다. 같은 이름의 남자 에르난을 만났을 때, 제시카는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리를 함께 재현하고, 함께 듣고, 함께 침묵합니다. 이 장면에서 제시카는 상징계의 태도를 내려놓습니다. 이해하려는 주체에서, 감각을 감내하는 몸으로 이동합니다.
이 영화에서 소리의 정체를 묻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세요.
'이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니라, 이 소리는 왜 끝내 의미가 되지 않는가'
그러면 관점이 달라집니다. 소리는 메시지가 아니라, 기억의 흔적이고, 몸에 남아 있는 역사이며, 말해지지 못한 폭력과 죽음의 잔향에 가깝습니다. 콜롬비아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이 실재는 더 또렷해지지요. 설명되지 않아야만 유지되는 어떤 기억 말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 관객인 우리는 끝내 이해하지 못합니다. 라캉적으로 말하면, 관객은 끝까지 상징계에 남아 있고, 제시카만이 잠시 실재와 접촉합니다. 영화는 그 차이를 의도적으로 남겨둡니다.
그러니 이렇게 봐도 괜찮습니다. 메모리아는 소리의 정체를 밝히는 영화가 아니라, 정체를 밝히지 않아야만 존엄이 유지되는 어떤 것들에 대한 영화라고요.
콜롬비아는 역사적으로 말하지 못한 폭력, 기록되지 않은 죽음, 설명되지 않은 기억이 땅과 정글과 소리 속에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이 나라의 사정을 자세히 몰라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이곳이 ‘설명되지 않은 기억이 자연에 스며 있는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감독은 태국을 떠나 콜롬비아로 갔습니다. 이 영화는 개인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집단적 기억이 소리로 남아 있는 장소를 필요로 했거든요.
초반의 에르난은 상징계의 음향 전문가입니다. 소리를 분석하고, 재현하고, 파형으로 만들고, 말로 설명하려 합니다. 그는 우리가 익숙한 방식의 전문가입니다. 의미로 소리를 포획하려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끝내 그의 영역에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의미가 되지 않는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후반부 숲속의 에르난은 다릅니다. 그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측정하지 않습니다. 재현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소리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존재합니다. 기억을 저장하고, 땅에 묻고, 시간 속에 보관하는 사람, 후반의 에르난은 전문가가 아니라 기억의 보관소에 가깝습니다.
제시카는 초반 에르난에게서는 끝내 소리의 정체를 찾지 못하고 후반 에르난에게서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도달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정체를 ‘알았다’기보다, 정체를 의미로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라캉적으로 말하면, 제시카는 상징계의 질문을 내려놓고 실재를 실재로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관객인 우리는 끝내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상징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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