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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의 영화글쓰기

한글을 사랑한 윤동주

by 쌍차쌍조 2025.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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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2016.이준익)

독립운동가 윤동주와 그의 절친이자 사촌인 송몽규의 일대기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다룬 영화 동주는 이준익 감독의 저예산 촬영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역사와 인간을 다정하고도 치열하게 그려온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소원>,<사도>,<박열>,<자산어보>등 한국 영화사에 깊은 자취를 남긴 작품들을 연출해왔습니다.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부일영화상 감독상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이 증명하듯 그는 흥행과 예술을 동시에 일구어낸 드문 감독입니다. 
이준익 감독이 영화<동주>를 통해 택한 길은 놀랍도록 단순하고 조용한 방향이었습니다. 5억 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컬러가 아닌 흑백을 선택했고, 화려한 세트나 특수효과 대신 인물의 감정과 시의 언어에 집중하였습니다. 교토와 후쿠오카의 배경은 국내 세트장에서 재현되었으며, 배우와 스태프의 규모 역시 최소화되었습니다. 감독은 상업영화의 틀로는 윤동주의 삶을 담을 수 없었고 흑백이라는 선택이야말로 시인의 세계가 가장 가까운 방식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습니다.  
<동주>는 윤동주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전기 영화가 아닙니다. 시인이라는 존재가 이 땅에서 어떻게 말하고 침묵하며, 견뎌내었는가를 시와 시선, 그리고 관계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그 담백하고 절제된 흑백의 풍경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윤동주의 목소리를 다시 발견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선보이는 윤동주 시인의 시어에서 영감을 받은 시각 예술작가들의 작품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전시는 윤동주의 대표시 [서시]와 [별 헤는 밤]을 키워드로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윤동주는 오늘날에도 아름답과 서정적인 한글 시어를 사용하여 한민족의 공동체 정신과 민족정서를 표현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등장하며, 한국과 일본에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교토 아라시야마 강변에도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습니다. 인근 강변에서 점심을 먹으며 가깝게 느껴보는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감동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영화는 동주에게 무엇을 묻는가요?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짧은 생애를 다루면서 그의 친구이자 사촌 송몽규 일대기를 서사로 합니다. 흑백의 영상 언어를 통해 시인의 내면과 시대의 그림자를 깊이 있게 비추어냈습니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현재 시점을 중심으로 두사람의 청춘과 우정, 문학과 저항의 시간을 과거 회상 장면으로 엮어냅니다. 이 현재와 과거의 교차 편집은 사실을 나열하는 구조가 아니라, 질문과 응답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은 시와 문학을 통해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정신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일본으로 유학으로 떠나며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합니다. 송몽규는 교토국제대학에 합격하지만, 윤동주는 입시에서 떨어져 도쿄의 대학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송몽규는 일본에서 존선인들을 모아 독립운동을 펼치고, 윤동주는 시를 통해 조선의 아픔과 희망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윤동주는 정지용 시인을 만나기도 하며, 시집 출판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게 됩니다. 옥중에서 윤동주는 시를 쓰며 저항의 정신을 이어가지만, 두 사람은 생체실험의 일환인 의문의 주사를 맞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화는 현재 형무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윤동주와 송몽규와의 과거회상 장면을 연결합니다. 일본군이 조사하면서 일어나는 물음에 플래시백 장면으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나뉠때 윤동주의 시낭송이 삽입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 순사는 윤동주와 송몽규에게 거짓으로 날조된 조목, 즉 학생들을 선동하여 조선의 독립을 꽤했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할 것을 강요합니다. 


1. "송몽규의 독립운동에 개입했나?"  "송몽규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
2. "너의 시를 봐도 네놈들 사상을 의심할 만해."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그 비싼 공부를 해가면서 뭐하러 문과에 가겠다는 거야?" 
3. "송몽규는 중경으로 갔다, 알고 있나? 군사자금 모으는 활동을 했다. 왜 했다고 생각하나? 옹기 경찰서에 체포된 몽규를 면회한게 너 아니야? 
4. "왜 말 안했습니까? 몽규가 여기 있다는 걸." "평생 함께 했다면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군." "송몽규의 글씨는 알아볼 수 있겟지? 릿교 대학에서 도시샤 대학으로 간 것도 송몽규의 영향 아닌가? "
5. 미국의 폭탄이 떨어지고 소련이 참전을 한다고 우리가 겁을 먹을것 같나? "아시아 해방이라는게 무엇입니까?" 
    "교토는 왜 갔나?" "다카마쓰가 보냈나?"
6. "너는 송몽규의 그림자밖에 안 되는 인물이니 모든 일을 송몽규에게 돌려도 이상하지 않지. 부끄럽지 않나?"
7. "해당 사항에 서명을 해라. 너는 모두 해당되니까 빠짐없이 해야 할거야."
    "이런 일을 왜 하는 겁니까?"
     "뭐가?"
     "여기까지 잡아와서 이런 요식 행위는 왜 하는 건가?"
     "문맹국에서는 합법적 절차라고 부른다."
 
일본군 순사는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은 윤동주에게 허위 자백을 깅요함으로써 그의 시적 활동과 순수한 문학 정신마저도 독립운동과 연관 지어 탄압하려 합니다. 이는 조선인의 모든 행위를 불온하게 보고, 그들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폭력적인 식민 통치 방식을 상징합니다. 서명을 받아내려 한 것은 그들의 죄를 합법화 하고 그들의 저항 의지를 꺽으려는 시도였습니다. 
윤동주는 일본군 순사의 강요 앞에서 쉽게 서명하지 못하고 깊은 고뇌에 빠집니다. 이는 그가 시를 통해 끊임없이 성찰했던 부끄러움과 연결됩니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이 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거짓에 서명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부끄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합니다. 침묵과 서명을 거부하는 행위는 물리적인 저항이 아닌 자신의 시적 순수성과 정신적 청렴성을 지키려는 내면적 저항의 표현입니다. 그의 부끄러움은 단순히 소극적인 감정이 아니라,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강한 정신력 저항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심문 장면에서 두 사람의 점프컷 교차 연출로 윤동주는 시인으로서의 고뇌와 부끄러움을, 송몽규는 행동가로서의 울분과 한을 토해냅니다. 겉으로는 다른 감정을 표출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의 얼굴이 교차되면서 관객은 궁극적으로 같은 고통과 열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점프컷은 두 인물의 서로 다른 저항 방식이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으며, 오히려 상호 보완적임을 보여줍니다. 한 명은 내면의 성찰과 문학을 통해, 다른 한 명은 직접적인 행동과 투쟁을 통해 일제에 맞섰습니다. 영화는 이 두가지 방식 모두가 당시 시대에 필요한 저항이었음을 존중합니다. 결국 윤동주와 송몽규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조국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이자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이 교차되는 것은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의 정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통해 그의 내면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관객이 그의 고뇌와 감정에 깊이 공감하도록 유도합니다. 각 시퀀스별로 시낭송이 그의 감정을 드러내고 영화의 메시지를 심화하는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 낭송은 영화의 서사 흐름과 맞물려 그의 심리적 변화를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었습니다. 첫 시퀀스에서 순수한 열정과 시대의 그림자를 회상하며 윤동주와 송몽규가 경성으로 가기 전의 문학적 열정, 친구들과 순수한 교류 등이 그려집니다. 청춘의 꿈과 고민이 주를 이루는 시기에 송몽규가 명의조 선생님의 영향으로 중국으로 나서는 장면에서 [흰 그림자]를 낭송합니다. 

흰 그림자

황혼(黃昏)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사슴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윤동주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시대적 상황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송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시인을 꿈꾸던 윤동주는 질투심을 느낍니다. 몽규는 그런 동주의 마음을 헤아려 백석의 시집 [사습]을 건네며 발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주는 당선되지 못하는 현실에 힘없이 반응합니다. 한편, 동주의 아버지는 그가 의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며 몽규의 아버지는 몽규의 문학활동에 적극적인 지원을하는 모습이 대비됩니다. 이후, 동주와 몽규, 익환이 함께 잡지를 만들며 글쓰기의 목적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몽규가 이광수의 경제적 혁명에 대해 쓴 글을 두고 선생님은 "주권 없는 민족에게 이상을 노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주권 회복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명확한 의지를 가진 몽규는 명의조 선생을 만난 후 중국행을 결심하고 "동주 너는 시를 쓸 것이고, 익환이는 신학대학에 갈 것이며, 나는 중국으로 갈 것"이라고 선언하며 떠납니다. 영화는 이처럼 각 시퀀스를 연결하는 플롯으로 윤동주의 시 낭송을 활용합니다. 이 시들은 관객에게만 들리는 외재음으로 상입되어, 시인으로서의 윤동주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표현하며 영화를 아름다운 '시화'처럼 만들어줍니다.
 

 "너의 시를 봐도 네놈들 사상을 의심할 만해."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그 비싼 공부를 해가면서 뭐하러 문과에 가겠다는 거야?" 일본군의 조사를 받으며 연결되는 동주 아버지의 대사와 의사에게 끌려가 주사를 맞는 장면에서 동주의 시낭송은 암울합니다. 본질적인 고뇌를 치료할 수 없는 의학을 공부하라는 아버지를 떠올린 층위적인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윤동주 시인이 겪었던 다층적인 고통과 그의 저항 정신을 극대화하여 보여줍니다. 형무소 심문 장면에서 동주 아버지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연출입니다. 이는 윤동주가 외부의 식민 통치 압박뿐만 아니라, 가족으로부터의 현실적 기대와 실용적 가치 추구라는 내면의 압박에도 시달렸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짊어져야 했던 개인적인 삶의 무게를 상징합니다. 
일본군 순사가 읽은 [쉽게 씌여진 시]의 일부,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동주의 시가 낭송되는 것은 그의 내면세계이자, 그가 지키고자 했던 순수한 정신의 발현입니다. 그의 시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가올 밝은 시대를 기다리는 시인의 강인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육체는 고통 받고 외부와 내면의 압박에 시달리지만, 그의 정신과 시는 결코 꺽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치료의 학문인 의학이 정작 형무소에서는 동주의 육체를 파괴하는 도구(의문의 주사)로 사용되는 아이러니는 이 장면의 비극성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물리적인 치료는 그의 본질적인 고뇌나 시대의 아픔을 해결할 수 없음을, 오히려 그의 생명을 앗아가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용을 합니다. 일본군 순사의 위협, 아버지의 현실적인 염려, 그리고 동주 자신의 시적 고뇌가 한데 얽혀 시각적, 청각적으로 표현됨으로써, 관객은 윤동주가 겪었던 고통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이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시 낭송은 이 모든 압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시인의 영혼을 대변하며, 그의 죽음이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이었음을 강조합니다. 
 


경성으로 가는 기차 안 시가 플래시백과 함께 낭송되며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시인이 되고자 하는 결심을 새롭게 다짐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윤동주의 내면의 결단과 시대 앞에서의 조용한 선언이기도 한 새로운 길입니다. 
영화에서 시 낭송과 플래시백이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감정선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사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인물 특히 윤동주 시인의 복잡한 내면과 감정변화를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결정적인 역활을 합니다. 마치 서로 다른 퍼즐 조각들이 완벽하게 맞춰지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동주>의 플래시백은 감정의 맥락과 원인을 제시합니다. 현재의 심문 장면과 대비되면서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대한 맥락과 원인을 제공합니다. 동주가 심문실에서 느끼는 고통, 자책감, 혹은 결연함 같은 현재의 감정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플래시백을 통해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일본군 순사가 "몽규와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고 다그칠 때, 그의 과거 문학 활동이나 송몽규와의 교류가 플래시백으로 나타나면서 그의 현재 감정의 뿌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과거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현재의 암울한 심문실과 교차되면서 인물들이 겪는 비극적인 감정이 더욱 극대화됩니다. 이 대비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깊게 만듭니다.동주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구체적인 사건들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의 내면적 갈등이 왜, 어떻게 심화되었는지를 관객이 직접 목격하게 합니다. 플래시백은 감정의 이유를 시각적으로 설명해주는 역활을 합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별헤는 밤이 낭송되는 시퀀스는 경성에서 문학활동을 시작하며 동주의 삶에서 비교적 희망적인 시기를 상징합니다. 그의 시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동주의 내면적 성장이 이루어지고,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던 시기를 잘 보여줍니다. 몽규,어진,철중과 함께 잡지를 만들고 문학 활동을 하는 것은 윤동주 시인이 문학적 역량을 펼치기 시작한 시기를 의미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듬고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문학의 방향성과 역활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시 지식인들이 시대의 아픔 앞에서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에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윤동주 시인 또한 시를 쓰는 것을 넘어 자신의 문학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음을 시사합니다. 
형무소에서 병든 몸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낭송하던 것과 달리 어진과의 밤길 대화는 순수한 문학적 교감과 평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별헤는 밤 낭송은 서정적이며 자신이 별을 헤며 내면을 성찰하고, 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겠다는 고요하지만 확고한 결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지켜내려 했던 세계는 바로 시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아름다움과 진실, 그리고 희망이었을 것입니다.별헤는 밤은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시적 자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이 시가 이 시퀀스에서 낭송되는 것은 그가 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딘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아우의 인상화는 윤동주 시인이 아우의 얼굴을 보면서 느낀 인상과 생각을 그린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외부의 강압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고요하고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정지용의 가르침을 통해 부끄러움의 의미를 깨달은 윤동주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에 반응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시입니다. 
<동주>는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고 현재의 심문 장면을 축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비선형적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관객에게 윤동주의 기억 속을 함께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영화의 미스테리적 요소를 더해 심문관의 질문과 함께 과거의 단서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관객은 윤동주가 왜 체포되었는지, 그의 삶에 어떤 비밀이 있었는지를 추리하게 됩니다. 플래시백은 정보를 한 번에 다 보여주지 않고 질문이나 특정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점진적으로 공개합니다. 이는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줍니다.이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독립운동에 연루된 구체적인 경위나 그들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플래시백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합니다.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는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정지용 선생과의 만남, 창씨개명의 현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우의 인상화 시낭송은 동주의 내면 변화에서 시인의 정체성과 고뇌가 깊어지는 전환점입니다. 문학적 스승 정지용은 당시 시인 지망생이었던 윤동주에게 큰 영향을 준 선배 시인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와의 만남은 동주에게 문학의 본질과 시인의 역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부끄럼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이 대사는 윤동주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인 부끄러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합니다. 소극적인 감정이 아니라 불의한 시대에 대한 양심의 반응이자, 사신을 성찰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용기 있는 행위임을 일깨워줍니다. 이는 창시개명을 강요받는 현실 앞에서 윤동주가 겪는 내면의 갈등을 해소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가 됩니다. 
 

 

쉽게 씌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여진 시가 낭송되는 시퀀스는 동주의 내면적 고뇌를 극대화하여 보여줍니다.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동주의 말은 더 이상 시인의 고뇌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시대에 저항하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동안 몽규의 행동력을 부러워하고 자신을 부끄러워 했던 동주가, 마침내 행동의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변화를 의미합니다. 몽규가 동주를 자신의 위험한 활동에 끼워주지 않고 시를 쓰라고 하는건 동주를 지켜주고자 함이지만 영화는 동주의 내면을 반영한 쉽게 씌여진 시를 낭송합니다. 
몽규가 떠나고 홀로 남은 동주가 그가 떠난 비 내리는 골목을 바라 볼 때 나오는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고독과 부끄러움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입니다. 시인은 어두운 육첩방에서 쉽게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과 현실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을 깊이 반성합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의 내면적 갈등과 자기 성찰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적극적인 저항을 원하는 마음과 현실적인 무력감 사이에서 괴뇌하는 윤동주의 모습이 이 시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공상(空想) 


내 마음의 탑(塔)  
나는 말없이 이 탑(塔)을 쌓고 있다.  

명예(名譽)와 허영(虛榮)의 천공(天空)에다  
무너질 줄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無限)한 나의 공상(空想)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黃金), 지욕(知慾)의 수평선(水平線)을 향하여.
 
윤동주와 송몽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면서도 깊은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관계가 단순한 친분을 넘어선, 매우 특별하고 복합적인 유대감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사촌 형제이자 어린 시절부터 모든 생애를 함께한 친형제와 다름없는 사이였습니다. 함께 자라며 학업과 유학을 같이하는 등 공유하는 경험이 매우 많았기에,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저항 방식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암울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아픔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으며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은 동일했습니다. 이 공통된 목표와 시대에 대한 고뇌가 그들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문학으로, 다른 한 명은 행동으로 그 책임을 다하려 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로서의 깊은 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더 적극적이고 행동 지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타고난 리더십과 강한 추진력으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는 기질이 강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을 문학적 성찰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당장 행동하여 현실을 바꾸고,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직을 만들고 조선인들을 규합하여 실질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이 진정한 저항이라고 믿었습니다. 문학은 현실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적극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런 그가 동주를 자신의 활동에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동주를 존중하고 지켜주려는 깊은 애정과 배려에서 비롯된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동주가 다른 방식으로 조국에 기여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윤동주는 송몽규와는 달리 내성적이고 섬세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색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했습니다. 직접적인 행동보다는 내면의 고뇌와 시를 통해 세상을 표현하는 데 익숙했습니다. 윤동주는 조국의 현실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부끄러움은 그를 괴롭히는 감정이었지만 동시에 그를 시인으로 더욱 깊이 있게 만들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양심의 발로가 되었습니다. 윤동주는 시를 통해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고, 빼앗긴 말과 글을 지키며,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정신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시는 문학 작품을 넘어, 일제에 대한 정신적 저항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펜이 총칼보다 강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시를 쓰는 데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길을 통해 시대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몽규가 행동으로 저항했다면, 동주는 시로써 시대를 기록하고 증언하며, 민족의 정신을 일깨우려 했습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죽음 장면에서 그의 시 서시의 시 낭독은 눈물을 삼키며 지켜보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동주와 몽규의 진술의 일치를 느끼게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말과 행동을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동일한 정신과 가치관이 흐르고 있었습다. 윤동주가 마지막 심문에서 서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일본군이 날조한 독립운동가라는 죄목은 거짓이자, 자신이 진정으로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했던 모습이엇습니다. 그 거짓된 죄목에 서명하는 것은 자신의 양심과 시인의 순수성을 배반하는 행위였기에, 그는 이를 거부함으로써 내면의 진실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의 부끄러움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고결한 양심의 발현이었습니다. 윤동주의 서명 거부는 물리적 저항이 아닌, 정신적, 도덕적 저항의 극치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는 거짓에 끝까지 맞서 싸우며 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진실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송몽규가 서명하라는 내용대로 하지 못해서 분하다고 말하며 서명하는 것은 자신이 꿈꾸었던 만큼의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치지 못한 데 대한 깊은 분노와 좌절감 때문입니다. 그는 일본군이 자신을 독립운동가로 규정한 그 내용이 실제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이었기에, 그들의 고발을 오히려 자신의 투쟁 의지를 표명하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송몽규의 서명은 굴복이 아니라, 강력한 역설적 저항이자 도발입니다. 그의 분노는 아직 꺾이지 않은 투쟁 의지와 불굴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의 행동은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그 근본에는 일제에 대한 단호한 저항 의지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굳건한 정신이라는 공통된 뿌리가 있습니다. 윤동주는 거짓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진실을 지키려 했고, 송몽규는 자신의 진정한 열망을 담아 서명함으로써 진실에 헌신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시대의 아픔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마지막 심문 장면은 윤동주와 송몽규가 일생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대에 맞섰지만, 그들의 영혼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음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점프컷 연출은 이러한  두 인물의 대비와 공통점을 동시에 부각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깊은 내면과 숭고한 정신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명장면입니다. 

시와 영화의 만남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7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윤영석, 어머니는 김룡입니다. 아우 윤일주와 당숙 윤영춘도 시인이었고, 함께 자란 사촌 송몽규는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엇습니다. 1931년 명동 소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인 관립학교와 용정 은진중학교를 거쳤습니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진학했으나, 신사참배 문제로 학교가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를 졸업했습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그는 정지용 시인을 만나 문학적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인간적으로도 존경의 대상이었던 선배 시인으로 사랑한 시인 중의 한 명으로 꼽았습니다. 
일본 유학에서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고 같은 해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전학했습니다. 1943년 7월 귀향 직전 송몽규와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옥중에서 공복을 불과 몇 달 앞둔 그의 죽음 까지 젊은 생을 영화로 그려내었습니다. 
 

1917년 12월 30일

  • 중국 지린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출생
    (현재는 중국 영토지만 당시 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이주민이 거주하던 지역입니다.)

1925년

  • 명동소학교 입학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시와 글쓰기에 소질을 보입니다.)

1931년

  • 용정 은진중학교 입학
    (이 시기부터 꾸준히 시를 쓰며 문학소년으로 자라납니다.)

1936년

  • 평양 숭실중학교에 진학했으나, 일제 당국의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해 중퇴
  • 다시 용정의 광명학원 중학교로 전학하여 졸업

1938년

  •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 입학
    (이 시절 그는 친구 정병욱, 송몽규와 교류하며 시 창작과 사색을 심화시킵니다. 대표작들이 이때 집중적으로 씌어졌습니다.)

1941년

  • 졸업을 앞두고 시집 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자비로 출간하려 했으나 출판 무산
  •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 교토 도시샤대학(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입학

1942년 10월

  • 전쟁 중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친구 송몽규와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
    (조선 독립운동 및 반일 감시 대상으로 지목됨)

1943년~1945년

  •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이때 시인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며, 고문과 약물 실험의 피해자였다는 증언도 존재합니다.)

1945년 2월 16일

  •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향년 27세)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숨졌으며, 사인은 ‘뇌막염’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타살 의혹이 강하게 제기됩니다.)

사후 연보

1948년

  • 친구 정병욱이 보관하고 있던 육필 원고를 바탕으로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간

1968년

  • 서울 연세대학교 교정에 윤동주 시비(詩碑) 건립

1990년대 이후

  •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의 문학과 삶이 광범위하게 재조명되며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양심과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됨. 교토의 도시샤 대학 교내에 윤동주 시비는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지 50주기1995년에 건립됨 / 교토 아라시야마 근처에 있는 윤동주 시비는 2017년에 건립됨.

 

1990년에 우지강 소풍 기념사진이 세상에 알려져 생전의 윤동주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사진이 있습니다. 그 사진은 1943년 초여름 윤동주가 학우들이 마련한 송별 소풍을 나와 다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은것입니다. 이 다리는 그 당시 건설된 명소였다고 합니다. 그 장소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건립되었습니다. 우지시 우지강변의 시비는 험한 기류 속에 12년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기억과 화해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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