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2023.빔 벤더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가 연출한 작품으로, 일본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2023년 5월 25일에 제 76회 칸 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되었으며 주연 배우 야쿠쇼 코지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엔 2024년 7월에 개봉해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변화와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무상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의미를 느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야쿠쇼 코지의 섬세한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코모레비의 삶, 무상의 영화
히라야마는 매일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른 새벽, 이웃의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고, 조심스레 이불을 개고, 면도와 양치, 식물에 물을 주는 일로 아침을 엽니다. 현관 앞에서 늘 쓰던 작은 물건들을 천천히 챙겨 봉고차에 오르기까지, 그의 몸짓은 하나하나 의식을 지닌 예식처럼 느껴집니다.
봉고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카세트 테이프의 음악은 그가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대신 들려줍니다. 그는 거의 말이 없지만, 올드 팝 속에서 그의 시간과 감정이 흐릅니다. 어딘가 고여 있는 듯하면서도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그 감정. 영화는 그런 흐름을 말없이 포착합니다.
히라야마는 도쿄 시내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입니다.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반복하는 그는, 도시의 이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코 ‘노동’이나 ‘빈곤’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걷는 골목, 그가 바라보는 나무, 그가 카세트에서 틀어놓는 음악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피어나는 찰나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코모레비처럼 일렁입니다. 코모레비는 일본어로 ‘잎새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합니다. 고요한 숲의 공기처럼, 영화의 시간은 섬세하게 스며듭니다.
히라야마는 오늘도 어제처럼 일하고, 내일도 오늘처럼 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적인 일상은 단조롭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빛의 결, 자판기 앞에 멈춰 선 그 짧은 순간의 숨결, 봉고차 안 음악의 박동처럼, 그의 하루는 늘 ‘새롭고 다르게’ 반복됩니다.
영화는 그렇게 한 사람의 루틴을 통해 무상(無常)을 보여줍니다. 단 하루도 같은 해질녘은 없고, 같은 바람도, 같은 그림자도 없습니다. 어느 날 문득 히라야마의 눈에 들어온 노을처럼, 우리도 그가 바라보는 풍경 앞에 멈춰 서게 됩니다.
히라야마의 삶은 마치 『금강경』의 한 구절을 옮긴 듯합니다. “형상에 집착하지 말고, 형상이 없음을 보라.” 그는 굳이 말을 하지 않고도, 존재 자체로 수행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명상처럼, 숨을 들이마시는 모든 순간이 수행의 자리입니다.
히라야마는 매일 사진을 찍습니다. 특별한 장소도, 특별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눈앞에 놓인 풍경, 그 순간의 빛과 그림자를 담아냅니다. 마치 존재의 순간을 기록하듯이. 그 사진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의 하루를, 마음을, 그가 사랑하는 세계를 말해줍니다. 그 사진들 속에서 문득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게 됩니다. 어쩜 나와 닮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구나 싶었습니다. 영화속 히라야마에게 감정이입이 되기보다는 나를 닮은 그에게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지면서 남는 것들, 삶의 틈에서 피어난 빛
히라야마의 하루는 반복되지만, 영화는 그 반복을 통해 변화의 결을 드러냅니다. 그의 일상은 고요하지만 결코 정지된 상태가 아닙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을 닦고, 캔커피를 마시고, 햇살을 찍는 매일이지만, 그 하루의 각도는 늘 다르게 기울어집니다. 바로 이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히라야마가 매일 들고 나서는 카메라, 그리고 그와 나란히 흐르는 음악입니다. 그의 사진 속 ‘코모레비’는 단지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흔들림과 겹쳐지는 내면의 풍경입니다.
꿈속에서도 반복해 나타나는 그 햇살은, 어쩌면 그가 매일 삶의 가장 고요한 중심에 서서 “나는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화려한 대사를 통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빛을 바라보며 존재를 말합니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명확한 갈등이나 전환 없이 흘러갑니다.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바깥이 아닌 ‘틈’ 속에 존재합니다. 예컨대, 아야가 갑자기 볼에 뽀뽀를 하고 달아나는 장면. 그 장면은 어떤 사건도 일으키지 않지만, 히라야마의 표정—목욕탕 물속에 잠겨 지어 보인 눈가의 웃음—에서 우리는 깊은 감정의 진폭을 감지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돌발적인 애정 표현이, 히라야마의 오래 닫힌 마음에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그는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 움켜쥐는 대신, 미소를 띤 채 그 감정을 흘려보냅니다. 사라지며 남는 것, 바로 그것이 히라야마의 존재 방식입니다. 미장센 또한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밀도 높게 감정을 담아냅니다. 햇살이 떨어지는 다다미방의 빛,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강변의 길, 빨래방에서 연필로 테이프를 감는 손끝—이 모든 장면은 삶의 ‘연출’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목격’하는 방식으로 영화화됩니다. 특히 흑백의 꿈 장면은 색채가 빠져나간 자리에 내면의 기억과 감정이 스며드는 여운을 남깁니다. 히라야마는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말을 겹겹이 담아냅니다. 카메라 렌즈처럼, 그의 눈빛은 타인을 담고 음악은 그의 대사입니다. 그가 들려주는 올드 팝은 한때 청춘이었던 기억의 반짝임이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감정의 파동입니다. 그 노래들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한 한 남자의 마음을 대신 노래합니다. 다카시가 몰래 여자친구 아야에게 넣어준 카세트 테이프를 돌려주려 히라야마를 찾아옵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한 번 더 듣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둘은 봉고차에 올라 음악을 듣던중 아야가 기습 볼뽀보를 하고 달아납니다. 너무도 순수한 이 감정 앞에 히라야마는 어리둥절 했지만 그 날 오후 그의 다다미방, 햇살을 받으며 비스듬히 누운 자리에 퍼펙트 데이즈가 흐릅니다. 꿈에 보이는 코모레비가 춤추듯 흔들리고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신까지 꿈속인지 현실인지 모르게 달려간 히라야마는 목욕탕 수면 아래 보일듯 말듯 눈가의 주름짓는 미소를 짓습니다. 그의 행복을 엿보았습니다. 그날의 퍼펙트 데이즈 음악은 영화의 대사이고, 코모레비는 플롯이 되었고 그의 미소는 내러티브가 되었습니다. 완벽한 하루는 그에게 누군가와 연결된 그런 날이었습니다.
음악이 대사라는 은유의 타당성을 말하자면 히라야마는 거의 말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감정을 설명하는 건 음악입니다. 이런 경우 영화 이론에서는 비언어적 내러티브 요소라고 부르기도 하고 음악이 정서적 주석 역활을 하며 인물의 내면을 대신 발화하는 경우로 해석합니다. 실제로 음악이 서사의 주체처럼 기능하는 영화에서는 음악이 대사였다는 표현은 이론적으로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코모레비가 플롯이라는 표현은 시적이지만 영화 이론적으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 플롯은 사건의 배열이나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구성을 의미하지만 현대 영화에서는 특히 서사적 사건이 적거나 루틴의 반복 속에서 의미가 발생할 때 풍경이나 시간의 흐름 그자체가 플롯이 된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들뢰즈의 시간 - 이미지 이론을 떠올려보면 행동이나 사건보다 시간의 감각 자체가 플롯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코모레비는 히라야마가 매일 찍는 사진이고 꿈에도 등장하며 그의 감정의 파장을 따라 반복되면서 조금씩 다르게 변합니다. 그렇기에 코모레비가 사건의 틀을 대신하는 구성적 리듬, 즉 플롯의 심장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소가 내러티브다는 감정의 진보를 알려주는 상징입니다. 내러티브는 단순히 이야기의 줄거리뿐만 아니라 인물의 변화와 그로 인한 감정의 흐름, 시간의 경험, 의미의 구조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히라야마는 말하지 않지만 그의 눈가 주름진 미소는 아야의 뽀뽀, 음악, 그리고 하루의 감정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그 미소 하나에 감정의 아크(arc)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미소는 서사의 정점이자 히라야마의 내면을 완성하는 내러티브의 결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차이와 반복의 리듬을 몸으로, 언어로 본다
<퍼펙트 데이즈>는 전형적인 시간 - 이미지 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는 명확한 원인 - 결과, 혹은 목표 지향적인 플롯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히라야마는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반복되는 일상 속 지금 - 여기에 천착하고, 그 리듬을 통해 인물의 내면 시간의 감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들뢰즈가 말한 운동 - 이미지의 위기 이후, 주체는 더 이상 세계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단절된 채 사유 속에서 부유한다는 서술 구조와 닮아 있어요. 즉 히라야마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살고 있을 뿐이며 관객은 그 틈에서 시간 그 자체를 체험하게 됩니다. 일상을 무심히 다룬다는 면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과 비교해봅니다. 비슷한 듯 전혀 다른 결을 지닌 영화, 공통점은 둘 다 시간 - 이미지의 계열 속에 있습니다. 또한 일상, 반복, 정지된 시선, 감정의 파동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설명하지 않고, 보여줄 뿐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항목 <퍼펙트 데이즈> (빈벤더스)홍상수 영화들
정서의 중심 | 평온, 수용, 정제된 고독 | 아이러니, 불안정, 위태로움 |
카메라 시선 | 존중과 거리두기 | 무심한 듯 들이대기 |
시간의 흐름 | 루틴과 계절, 순환 | 반복과 차이, 변형된 기억 |
말의 힘 | 적은 말이 모든 걸 전함 | 말이 넘치지만 진심은 숨김 |
<퍼펙트 데이즈>의 시선은 치유의 정원 같습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세계는 꿈의 골목 같습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내가 추구하는 평온이라고 느껴지고 홍상수의 영화들은 자기 속내를 애써 말하며 자기를 어루만지는 사람의 일기장이라고 느꼈습니다. 히라야마는 그림자를 넘어서고 있으나, 홍상수 감독의 인물들은 그림자 안에서 헤매고 있는가? 질문이 툭 튀어 나옵니다. 히라야마는 이미 그림자와 동거하는 법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림자를 억누르지도,직면하지도 않으며 그저 함께 살아갑니다. 그에 비해 홍상수의 인물들은 아직 그 안에서 몸부림치고 기웃대고, 때론 즐기기도 합니다. <탑>의 병수를 그렇게 보았습니다.
히라야마는 말 없는 수행자 같습니다. 그의 삶은 고요한 리추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장실 청소, 나무를 올려다보기, 자전거 타기, 책 읽기, 카세트 음악 듣기 등 모든 행위에는 작은 절차에 커다란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차를 따르는 행위에 그냥 마시기 위해 컵에 따르는 건 습관이지만, 차를 따르는 시간에 나를 돌아보는 마음이 깃들면 그건 리추얼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서 햇살을 맞으며 "오늘도 살아 있구나"하고 느끼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하루를 여는 의식이 되지요, 기도, 절, 명상,참선 이런 행위들은 전통적인 종교적 리추얼입니다. 마음을 다잡거나, 경건함을 되새기거나, 초월적인 존재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행하게 됩니다.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행위 하나하나에 의미와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일상 루틴이 아니라 히라야마만의 리추얼입니다. 리추얼이란 마음이 머무는 반복입니다. 그냥 하는게 아니라 의미를 담아 하는 거지요. 작은 행동이라도, 그 안에 나의 믿음, 감정, 세계가 담겨 있다면 리처얼입니다.
리추얼의 어원은 rite - 의식, 의례(명사)입니다. 고대 사회의 풍습에 성년식이라는 의식이 사회적인 행사처럼 존재했는데 이는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관계로 한 사람이 성인으로 자라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대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성년으로 인정 받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셈[rit]해서 성년이라고 평가]rit]되는 아이를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 의식을 치뤘습니다. rite(의식,의례)는 rit(셈,평가)와 ite(명사)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발음상 겹치는 부분은 생략되었고요, 리추얼 ritual은 의식 행위, 의례식(명사) 의식의, 의례에 따르는 (형용사)은 rite(의식, 의례)에 al(명사, 형용사)가 더해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이렇게 보면 히라야마의 일상은 의식에 따른다는 뜻의 리추얼이 되지요. 의례적 행위는 내면 상태의 외적 표현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인물들은 리추얼하지 않은 듯 리추얼한 존재들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들은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입니다. 술 마시자고 갑자기 불러내고, 어제 했던 말 또 하고, 약속도 없이 움직이고, 자기 기분에 따라 울고 웃고 하는 그의 인물들은 히라야마의 침묵과 루틴에 비하면 이들은 산만하고 중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영화 대부분 그들은 예술가로 나옵니다. 영화감독, 소설가, 배우, 화가 등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관찰합니다. 실수하고 후회하지만 어딘가에 늘 창작하는 자로 존재하지요.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홍상수 감독은 예술가의 반복 자체를 리추얼처럼 찍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의 영화 속 반복은 매우 특별합니다. 히라야마의 침묵 속 리추얼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존재를 정제하고 고요하게 이어지는 리듬은 수행적 반복입니다. 홍상수의 인물들은 말 속의 차이와 반복 속 같은 상황를 반복하며 의미를 탐색하고 무심한 듯 말하는데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사유적 반복입니다. 히라야마는 고요 속에서 삶을 정화한다면 홍상수의 인물들은 혼란 속에서 삶을 응시합니다. 그러니까 달 다 리추얼적 존재지만, 양극단에 서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리추얼, 언어로 하는 리추얼. 홍상수의 영화는 다르지만 같은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같은 구조, 같은 장면, 같은 대사 그런데 다르게 느껴지지요. 이것이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영화로 구현한 것이 됩니다. 그는 리추얼처럼 반복되는 예술적 행위를 통해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감독입니다. 그의 인물들도, 감독 자신도 예술 안에서 자신을 되비추는 자화상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無狀은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고정된 자아나 실체는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은 우리에게 계속 같은 일을 하게 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고,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설것이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모두 반복입니다. 그 반복은 단 한 번도 똑같지 않습니다. 오늘의 밥은 어제의 밥과 다르고,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와 다르고 같은 영화의 글을 쓰지만 오늘은 다른 글을 씁니다. <퍼펙트 데이즈>의 글쓰기는 네 번째입니다. 첫 글은 허리 통증과 더불어 영화 속 음악에 몰입했었고, 두번째 글은 음악과 히라야마의 내면을 대사로 매칭시켜 보았고, 세번째 글은 들뢰즈의 영화철학을 반영하여 썼습니다. 들뢰즈는 불교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알게 된 철학자입니다. 그가 영화철학에 대한 [시네마1,2} 책을 썼다는것을 영화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만난 무상의 이치, 그의 철학 차이와 반복을 조금 더 밀착하여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로써 네번째, 블로그 이사를 하면서 글 자체를 그냥 이삿짐 옮겨 오듯 글을 작성하면서 전 블로그에서의 다른 글이 써지고 있습니다. 저의 몇 달 사이의 차이와 반복입니다. 반복 속이 차이, 차이 안에서 느껴지는 무상의 숨결입니다.
히라야마는 반복을 통해 정화의 길을 걷고, 홍상수의 인물들은 반복을 통해 자기 삶의 그림자를 마주합니다. 반복을 통해 다르게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느릿하게 아주 여운이 긴 내면의 깨달음이 빚어낸 문장 하나는 삶의 씨앗입니다. 발견이라는 창조의 불꽃입니다. 발견은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의미를 낳는 순간적인 창조입니다. 영화글쓰기를 통해 리추얼의 개념은 넓어지고 더 유연해졌습니다. 내 안의 세계관이 확장된 창조적 사건이지요.
지금 여기 존재합니다
영화 속 히라야마의 리추얼한 삶에 갑작스레 찾아온 두 번의 감정적 파동은 그의 꿈과 현실에서 흔들렸던 코모레비를 오히려 고요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히라야마의 감정이 크게 출렁이는 두 사건 첫 번째는 조카 니코의 방문, 두 번째는 단골 술집 여주인의 전 남편과 재회, 그리고 그림자 밟기입니다. 가족의 영향력이 개인의 삶에 가장 크게 미치는 만큼 조카 니코의 방문은 히라야마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 속 장치입니다. 니코의 엄마 즉 여동생과의 만남에서 정말 청소하는 일하고 사느냐는 질문에 끄덕이며 웃음짓는 히라야마의 표정엔 처연함이 묻어났습니다. 자동차에 개인 기사를 동반하고 온 여동생을 비추면 히라야마의 과거 무엇을 버리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했는지를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히라야마가 이전엔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삶은 경제적으론 안정되고, 부유하고, 편안한 삶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화장실을 청소하고 코모레비를 사진 찍고 같은 루틴으로 살아갑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살게 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동생의 등장은 그가 이 삶을 선택했다는 것, 그 선택 안에 고통도, 회한도, 해방도 동시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히라야마의 리추얼을 따라가다 문득 떠오른 것은 금강경의 첫 장 법회인유분이었습니다. '때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다시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입니다. 경전을 처음 대하던 그때는 위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기대했는데 고작 밥 먹고, 씻고, 앉았다는게 다이고 거기에다가 금강경의 핵심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편두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쿵푸팬더>의 불교적 배경 감상후 또 다른 불교적 요소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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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1>(2008.마크 오스본/존 스티븐슨)
(2008)는 마크 오스본과 존 스티븐슨이 공동 연출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200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가족 영화이자, 동양 철학을 서구 애니메이션 안에 녹여낸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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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의 미장센은 단연 코모레비 이ㅂ니다. 히라야마 삶의 질감 빛과 그림자의 시학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그의 내면 풍경을 구성하는 리추얼의 리듬입니다. 이 영화의 풍성한 미장센을 살펴보면 하나하나가 마치 히라야마의 고요한 기도처럼 느껴지는 이미지들입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무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빛, 그리고 그 속에 머무는 마음의 자리입니다. 그가 듣는 카세트테이프 속 감정의 아카이브는 대사를 대신합니다. 음악은 그의 과거, 청춘, 상실, 희망을 회상하게 하는 장치로 느껴집니다. 카세트 테이프라는 아날로그 포맷은 반복과 리추얼, 시간의 촉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가 존재하는 공간, 반복의 무대 화장실은 히라야마에겐 존재를 정화하는 성소가 되고 성스럽기까지한 그의 손길은 존중과 사랑, 돌봄의 감각이 스며있습니다. 그는 찰나의 무상, 영원의 프레임을 담는 사진을 필름 카메라를 사용합니다. 빛과 그림자를 포착하는 장면들, 찍고, 인화하고, 고르는 일련의 행위는 보이는 것 너머를 응시하려는 그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리듬과 리추얼의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활용하였고 조카 니코와 함께 달리는 강변 장면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삶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암시합니다. 이 모든 미장센은 조용한 반복 속에서 발견되는 진동하는 삶의 결입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에서 미장센으로 속삭이듯이 말합니다.
감각적인 영화의 완성도는 그림자 밟기의 장면에 닿아 있습니다. 그 장면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장난치는듯 보이지만, 삶과 죽음, 유년과 노년, 존재와 그림자의 간극을 놀이라는 리추얼 속에 담아냅니다.
결국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영화는 시한부의 노년 남자를 등장시켜 그 사실을 비춥니다. 그림자를 포개면 더 짙어져야 하지 않느냐, 변화지 않는다는건 말이 안된다는 그의 대사는 무상을 향한 유한한 생의 유희를 살며시 얹습니다. 몸을 벗으면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림자를 밟는다는 건 삶의 상처를 조심스레 밟고 나아가는 것, 과거를 달래고 현재를 살아내는 한 인간의 마지막 춤처럼 느껴졌습니다.
오쿠노인의 수많은 묘비 숲길을 걷던 순간은 또 다른 사유로 이끕니다. 삶과 죽음이 나란히 서 있는 길, 이미 열반에 들었지만 미륵불로 나투신다는 쿠카이 대사의 가르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중생을 향해 머물러 있는 장소입니다. 매일같이 쿠카이 대사에게 올리는 공양과 그 의례는 그분이 떠나지 않고 여전히 동행이인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믿음, 끝나지 않은 자비입니다. 영화와 오쿠노인은 지금 여기와 영원한 지금을 조용히 연결해줍니다. 영화와 순례, 철학과 일상에서 불교의 핵심 개념들이 문장으로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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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사찰순례 - 고야산 쿠카이(동해) 선사
한 걸음 한 걸음, 한 숨마다 내 안의 침묵을 비추는 순례의 여정 3박 4일의 기록 첫 날 고야산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오래도록 말하지 못했던 진실한 마음을 꺼내어 보는 여정, 체험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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